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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제로에 외국인 노동자마저 외면…처절한 지방

“아기 울음소리, 청년들 사라졌다”
신입생 없는 학교들, 이대론 소멸
외국인노동자도 이탈…속타는 지방

“큰 손자는 지금 어린이집 갔는데 작은 손자는 집에서 나오지 않아. 놀 사람이 없거든.”

지난 30일 충남 부여군 남면 삼용1리에서 만난 이승열(78) 할아버지는 방에서 혼자 놀고 있는 작은 손자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 마을에 작은 손자의 또래 친구는 전혀 없다. 딸이 고향으로 귀농한 뒤 낳은 큰 손자는 올해 7살, 작은 손자는 이제 3살이 됐다. 이씨는 “친구가 없어 밖에서 놀지 못하는 작은 손자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갓난아기 울음 끊긴 마을들

삼용1리가 있는 부여군 남면에선 지난해 아기가 단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 근처 양화면도 아이 울음소리가 끊겼다. 삼용1리는 1960년대에 150여가구, 600여명이 살던 제법 큰 마을이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하나둘 떠나더니 여느 시골 마을처럼 이젠 노인들만 남은 동네가 됐다.

지금은 70여가구, 108명이 살고 있다. 그나마 15명은 실거주자가 아니고, 80~90대 독거노인 수는 24명에 달한다.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에 접어들었다. 양화면 암수리 할머니들은 70대를 ‘젊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송혜순(78) 할머니는 “아이를 낳을 젊은 사람은 아예 없고 70대가 가장 젊다”며 “늙은이만 남은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사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고 했다.


삼용1리는 암수리보다 그나마 나은 편이다. 농기계를 다룰 수 있는 60~70대가 20여명 정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일꾼은 늙어가고, 사라진다는 점은 두 마을의 큰 걱정거리다. 삼용1리에선 2000년대 중반 20~30대 청년이 사라진 뒤 15년 이상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고 있다. 서형석(63) 삼용1리 이장은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젊은 사람 유입은 안 돼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서 이장은 농촌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정착해야 아이를 낳는데 시골에 들어올 여건이 안된다. 자식들이 온다 해도 못 들어오게 할 판”이라며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초기에 정착비용이 많이 들지 않도록 농토를 장기간 저렴하게 임대하는 등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치되는 빈 집도 문제다. 삼용1리 70여가구 중 빈 집은 10곳이 넘는다. 수도권에 사는 집주인들이 집을 팔지 않고 있는데, 관리가 안 되다보니 흉물로 변했다. 서 이장은 “빈 집 한 곳은 서울 사람이 주인인데 팔지를 않는다. 내려와 산다더니만 내려오지도 않는다”며 “마을 사람들이 계속 팔라 해도 소용이 없다. 기약이 없다”고 했다.

저출생 고령화로 농촌은 소멸위기에 직면해 있다. 신입생이 아예 없어 인근 학교와 통폐합하는 일이 다반사다. 작은 학교에서 교육받은 아이들도 더 좋은 환경과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다. 젊은이가 떠난 농촌은 외국인이 없으면 당장 멈출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다.

사라져가는 농촌 학교들

지난 30일 찾은 충북 보은군 산외면 산외초등학교 부근엔 문구점이나 학원이 없었다. 텅 빈 운동장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한구석에는 국민교육헌장 비석만 남았다.


학교 체육관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방학 체육돌봄교실에 참가한 학생 8명이 선생님 지도를 받아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체육관 안의 빈자리가 유난히 넓어 보였다. 조수민(12)군은 “같은 나이 친구들이 없어 외롭지만, 형 동생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외초 전교생은 12명에 불과하다. 올해는 신입생이 없다. 최순이 교장은 “매년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내년에는 분교가 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근 삼승면 송죽리 판동초교 송죽분교도 마찬가지다. 교실에선 학생 3명이 공예 선생님 지도를 받아 화분을 만들고 있었다. 이 학교는 올해 신입생과 4학년이 없다. 전교생은 7명이 전부로, 지난해 분교가 됐다. 교직원은 12명으로, 학생보다 많다. 발표나 토론수업 진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평소 수업시간에는 교사·학생 간 일대일 수업이 이뤄진다.


도시로 간 젊은층이 늘면서 학부모 나이도 많아지는 추세다. 50대 이상 학부모가 대부분으로, 20~40대를 찾아보기 어렵다. 삼승면에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라서 몇년 뒤면 폐교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6학년 학부모(66)는 “시골 작은 학교에 학생이 없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세금을 깎아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은군은 인구감소지역이다. 저출산과 인구 유출로 소멸위기를 겪고 있다. 출생아 수는 2020년 118명, 2021년 76명, 2022년 80명으로 줄고 있다. 충북에서 올해 신입생이 없는 초등학교는 12곳에 달한다.

경북도 올해 32개 학교가 신입생이 없다. 경주 의곡초 일부분교 등 3곳은 3년 연속, 포항 죽장초 상옥분교 등 10곳은 2년 연속 1학년이 없다. 1명인 학교도 30곳이나 된다. 경북 내 신설 유치원은 1곳이지만, 9곳이 문을 닫는다.

지방소멸 징후는 농어촌 학교 통폐합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방교육재정알리미에 따르면 1976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전국 3896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매년 84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전남이 839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 735곳, 경남 582곳, 강원 469개교 순이다. 경기도도 178곳에 달한다.

학교 통폐합은 학령인구(만 6~21세) 감소가 원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학령인구는 725만9000명이다. 2033년에는 531만6000명으로 곤두박질친다. 학령인구 감소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교에 이어 지방대까지 도미노처럼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노동자 없는 농촌은 ‘무방비 상태’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 주민 김태흥(69)씨는 20년간 사과와 배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3년 전부턴 겨울철에 딸기도 재배하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일을 도와온 캄보디아 출신 외국인노동자 두우썸낭(34)씨에게 사계절 내내 월급을 주기 위해서다.

겨우내 크지 않은 딸기농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대부분 두우썸낭씨의 월급으로 나간다. 김씨는 “사과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짓기 때문에 겨울에는 일감이 없다”며 “두우썸낭이 떠날 수 있어 겨울 일거리를 위해 딸기 농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4억원 넘게 들여 딸기농장에 자동화시설을 갖췄다. 사람 일손이 없어 목돈이 들더라도 자동화시설을 선택한 것이다. 김씨는 “농촌엔 일 할 사람이 외국인밖에 없다. 그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그나마 인건비가 너무 높아 남는 게 별로 없다”고 했다.

서흥리엔 80가구, 175명이 살고 있다. 이 중 청소년은 3명이 전부다. 나머지는 50~80대다. 이종열(65) 서흥리 이장은 “젊은 친구들이 교육환경과 일자리를 찾아 떠나면서 우리 마을엔 생산능력이 있는 20~40대가 아예 없다”며 “빈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운다. 외국인이 없으면 대한민국 농업이 유지가 안 된다”고 말했다.

올해 강원도 1767개 농가가 외국인 계절근로자 6425명을 지원해 달라고 신청했다. 지난해 상반기 외국인 계절근로자 배정 인원의 2배다. 그런데 배정받더라도 이탈하는 게 문제다. 지난해 강원도 외국인 계절근로자 3949명 중 실제 입국자는 74%에 그쳤다. 여기에 17%는 이탈해 불법체류자가 됐다. 인제에선 90%가 넘게 다른 지역으로 이탈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곳곳이 소멸위기에 놓여있다. 행정안전부는 2021년 226개 기조자치단체 중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40%가량이 인구감소지역이다. 전남은 22개 기초자치단체 중 16곳, 경북은 23곳 중 16곳, 강원도는 18곳 중 12곳이 인구감소지역이다.

2020년 기준 고령화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경북 의성군이다. 인구의 41.5%가 65세 이상이다. 전남 고흥군(41.1%), 경북 군위군(40.7%), 경남 합천군(39.6%) 순으로 나타났다.

인제·부여·보은=서승진 기자, 전희진 기자, 홍성헌 기자 sjse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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