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더문~🚀” 변동성으로 유혹하는 밈주식의 ‘검은손’

美 커뮤니티 ‘레딧’ 소문에 등락
BBBY·AMC 양대 고위험 밈주식
“강한 변동성 종목 고위험” 경고

미국 가정용 생활용품 소매점 체인 베드배스앤드비욘드의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매장 간판(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2020년 6월 미국 전기차 기업 루시드그룹의 캘리포니아주 본사에 전시된 시제품들. 가운데 이미지는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서 주식 투자자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AP뉴시스, 레딧 홈페이지 캡처

미국 뉴욕 증권시장에서 힘을 받은 종목은 코스피·코스닥시장의 상·하한가를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지난달 28일(한국시간) 뉴욕증시에서 환호와 좌절을 동시에 끌어낸 ‘슈퍼스타’는 미국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루시드그룹이었다. 8.99달러에서 출발한 주가는 그날 새벽 2시부터 불과 100분 만에 17.8달러까지 도달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기록된 시초가 대비 상승률은 97.9%. 큰 변동률에 거래가 12차례나 중단됐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영국의 한 주식 블로그에 올라온 소문이 루시드의 급등을 촉발했다. 자신을 ‘인수합병(M&A) 시장 전문가’라고 소개한 영국인 벤 헤링턴은 블로그 ‘베타빌’에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루시드 지분을 모두 사들여 뉴욕증시에서 상장폐지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적었다. PIF는 루시드 지분 65%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PIF가 나머지 35%의 지분도 매입한다는 소문은 미국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으로 흘러 들어갔다. 곧 SNS를 타고 월스트리트 전역에 퍼졌다.

월스트리트 경제지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루시드를 향해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쳤다. 대답은 간결했다. “소문이나 추측에 대응하지 않겠다.” 인정하지도, 확실하게 부정하지도 않은 루시드의 대응이 주식 호가창을 다시 흔들었다. 루시드 주가는 17.8달러에서 30분 만에 11.8달러까지 33.4%나 추락했다. 그렇게 반등과 조정을 반복해 결정된 마감 종가는 12.87달러. 시초가보다 43%나 올라갔지만, 그 위로 100%에 근접했던 일간 상승률의 고점까지 ‘개미’들의 시체가 수북이 쌓였다. 루시드의 당일 거래량은 뉴욕증시 전체를 통틀어 여섯 번째로 많았다.

루시드는 지난해 레딧에서 수도 없이 언급된 ‘밈(meme) 주식’ 중 하나다. 2020년 9월 미국 나스닥거래소에 상장되자마자 ‘제2의 테슬라’ ‘테슬라와 페라리의 결합’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투자금을 빨아들였다. 차량을 생산하기도 전이였다. 레딧에서 유독 자주 언급된 루시드는 밈 주식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루시드는 소셜미디어의 정서를 기반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ETF ‘BUZZ’에서 4.36%, 노골적으로 밈 주식만 편입한 ‘라운드힐 밈’ ETF에서 5.3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루시드는 2021년 10월 처음 출고한 차량을 고객에게 인도한 신생 기업이다. 한 대당 2~3억원짜리 고급 세단에 희소성을 덧씌웠지만, 기존 자동차 기업들 수준의 양산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한계도 존재한다. 루시드 간판 모델인 ‘루시드 에어’의 지난해 고객 인도량은 4369대에 불과했다. 분기마다 적자를 발표하는 루시드의 적정 주가를 놓고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 사이에서 5달러부터 21달러까지 추정치가 크게 엇갈린다. 이런 루시드 주가의 올해 첫 급등락은 레딧 회원들의 흥분을 끌어낼 만했다.

올해 들어 증권시장이 상승장으로 전환되자 밈 주식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밈’은 인터넷상에서 맥락 없이 형성돼 인기를 끌게 된 문화 요소를 뜻하는 말이다. 레딧 회원들이 2021년 1월 미국 게임 소매업체 게임스톱을 폭락시킨 공매도 세력에 대항해 주가를 끌어올린 ‘숏 스퀴즈 사건’이 주식 투자를 인터넷 문화 현상으로 확장한 밈 주식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지금의 밈 주식 투자는 부실한 실적에도 레딧 회원들의 선동이나 소문에 휩쓸려 주가를 결정하는 ‘투전판’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로나19 대유행에서 지난해 3월 5일 미국 뉴욕주에 재개장한 AMC 영화관에 관객들이 찾아와 입장권을 구입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가정용 생활용품 소매점 체인 베드배스앤드비욘드는 현재 밈 주식의 대표주로 꼽힌다. 이 기업은 파산신청을 검토하던 지난달 10일부터 3거래일간 192%나 폭등했다. 하지만 같은 달 27일 “부채를 갚을 재원이 충분치 않다”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한 뒤 22% 급락했다. 이 기업은 미국 영화관 체인 AMC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밈 주식의 ‘빅2(Big 2)’로 꼽힌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홍콩계 핀테크 기업 AMTD디지털은 지난해 7월 100달러를 밑돌던 주가를 불과 5거래일 만에 25배로 끌어올렸다. 상승의 원인은 종목 코드인 ‘HKD’에 있었다. 당시 강세를 나타낸 홍콩달러의 단위와 같다는 이유로 레딧 회원들의 선택을 받았다. 주가는 1개월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2000년대 휴대전화 시장의 제왕으로 여겨지던 핀란드계 노키아, 애플사 아이폰의 등장 이전에 버튼형 스마트폰을 생산했던 캐나다계 블랙베리는 돌아오지 않는 과거의 영광을 주가 등락의 재료로 삼는 밈 주식으로 전락했다. 나스닥거래소에 상장된 중국 농산물 기업 팜미는 미국 내 소비량이 적은 표고버섯을 생산하면서도 레딧 회원들로부터 밈 주식으로 지목돼 마치 기술주처럼 등락했다.

문제는 이런 밈 주식의 변동성을 좇은 한국 투자자들의 거래액이 수천억원 단위로 늘어난 점에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 포털 세이브로를 보면,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루시드 주식을 지난해 14억2700만 달러(약 1조7620억원)어치나 매수했다. 연간 해외 주식 매수액 10위, ETF를 제외한 단일 종목으로는 6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베드배스앤드비욘드에 대한 국내 투자는 올해부터 증가했다. 지난달에만 1000억원가량을 사들여 14번째로 많은 해외 주식 매수액을 기록했다.

증권가 전문가들은 고물가·고금리 국면의 끝을 예단할 수 없는 올해 자산시장에서 밈 주식처럼 강한 변동성을 나타내는 종목에 투자하면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경고한다.

지난달 25일 미래에셋증권 대치WM에서 만난 최홍석 선임매니저는 “밈 주식의 주가가 기업 실적이나 성장성보다 시장에 풀린 유동성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올해 경기 둔화의 저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부 조정 구간이 찾아오면 밈 주식의 하락이 더 선명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성장성을 추종하는 장세가 펼쳐졌지만, 지난해 하락장에서도 손실을 줄여온 대규모 투자자들은 우량주를 선호한다. 서울 강남권에서 수천억원대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최 선임매니저는 “올해 고객 포트폴리오도 지난해처럼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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