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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충전에 30분 덜덜… 휠체어장애인 울린 무심함

겨울철 휠체어 배터리 더 빨리 방전
지하철역 등 충전기 관리 소홀 다수
“역무원들이 시설 위치도 잘 몰라”

서울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 설치된 전동보장구 급속 충전기가 코드가 뽑힌 채 방치돼있다. 수습 이강민 기자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전모(62)씨는 며칠 전 외출길에 당황스런 일을 겪었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절반가량 남아있던 휠체어 배터리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급격히 줄어들더니 빨간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에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배터리 충전 설비가 없어서 추위 속에 한참을 고생했다고 한다.

전씨 사례처럼 겨울철 기온이 떨어지면 전동휠체어 배터리도 더 빨리 방전되는데, 지하철역이나 관공서 등에 설치된 급속 충전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어 많은 장애인들이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다.

9일 스마트서울맵에 표시된 ‘전동보장구 급속 충전기 지도’를 참고해 둘러본 서울지하철 역사 내 휠체어 충전기들은 작동하지 않거나 사실상 흉물처럼 방치된 곳이 많았다. 1호선 신길역의 경우 휠체어 충전기 코드가 아예 뽑혀있었다. 충전기 코드가 꽂혀있어야 할 2구 콘센트에는 공중전화용 전원이 대신 연결돼 있었고, ‘휠체어를 충전할 고객은 역무실로 전화 달라’는 안내판만이 붙어 있었다.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에 충전기가 설치돼 있는 경우도 있다. 1호선 영등포역의 충전기는 정상적으로 비치돼 있기는 했지만, 정작 주변에 휠체어가 오갈 수 있는 장애인 전용 출입구가 없었다. 충전기를 이용하려면 역사를 반바퀴 돌아서 반대쪽 출입구를 이용해야 했다. 충전기 옆에 달린 비상호출 통화장치 역시 투명 테이프로 덮힌 채 망가져 있었다. 역사 관계자는 “장애인 전용 출입구가 없기 때문에 우회해서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동휠체어의 배터리는 의자 밑에 달려 있어 외부에 바로 노출되는 구조라 한파에는 그렇지 않은 때보다 두 배가량 더 빨리 배터리가 닳는다고 한다. 박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조직실장은 “한 번 충전하면 보통 2~3일은 쓸 수 있는데, 겨울엔 하루를 채 버티지 못해 당일 충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에 설치된 전동보장구 급속 충전기. 출입문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찬바람이 부는 겨울, 휠체어 장애인들은 추위를 견디며 충전을 할 수밖에 없다. 성윤수 기자

휠체어 장애인 김민정(43)씨는 최근 지하철 1호선 한 역사 출입구 쪽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30분 동안 휠체어 충전 케이블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예상보다 빨리 배터리가 닳아 근처 지하철역을 찾았는데, 충전 단자 부분이 접촉 불량이라 손으로 잡고 있지 않으면 충전이 안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난 손을 쓸 수 있는 장애인이라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용 자체를 못하는 것”이라며 “충전기에 먼지가 쌓여있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역무원들한테 위치를 물어봐도 ‘(충전기가) 어디있는지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올 때가 많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장애인들은 휠체어 충전기 설치만큼이나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윤선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는 “급한 상황에서 찾게되는 시설인만큼 매일 점검이 필요하다”며 “고장이 난 경우엔 그냥 ‘고장났다’하고 끝낼 게 아니라, 이용자가 정보를 알기 쉽게 역사에 표시를 하고 휠체어 충전기 위치가 표시되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도 고장 사항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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