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정부 못 믿겠다”…직접 구호 나선 튀르키예 시민들

구호 활동 단체 “제대로 집계하면 사망자 10만명 넘을 것”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의 나르사나트 활동가들이 전달받은 구호 물품을 나르고 있다. 나르사나트 트위터 캡쳐

19일(현지시간) 오전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의 한 주택 앞에 상자를 가득 실은 트럭이 도착했다. 상자에는 옷가지와 신발, 장난감 등 다양한 구호품이 담겨 있었다. 튀르키예 전역의 시민들이 지역 문화예술 협동조합 ‘나르사나트’로 보낸 물품이었다.

나르사나트는 저소득층이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강연·공연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지역사회에 제공하는 단체다. 그러나 지난 6일 지진 발생 이후 이곳은 시민들이 주도하는 구호 활동의 거점으로 탈바꿈했다.

앙카라의 한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데니스(25)는 얼마 전 이곳에 합류해 구호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나르사나트에서 소식지 제작 업무를 맡은 그는 “재난 상황에서 더 고통받는 이들은 약자인데, 현재 정부의 구호 활동은 철저히 도심과 내국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약자인 교외 주민들과 난민들이 정부 지원에서 소외돼 더 큰 고난을 겪고 있다는 얘기였다. 데니스는 “기다려봐야 정부가 나서서 이들을 돕지는 않는다.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르사나트는 처음에는 집을 잃은 시민들이 머물 공간을 제공해주고 물자를 전달하는 통상적인 형태의 구호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지진 수습이 ‘일상 회복’을 향한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이들의 활동도 달라졌다.

나르사나트는 현재 가지안테프 근교를 7~8개의 권역으로 구분해 ‘맞춤형’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닿지 않는 교외·난민 등의 사각지대에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가스·전기 등 기반 시설이 여전히 복구되지 않은 지역에는 신속하게 조치가 이뤄지도록 정부를 채근한다. 데니스는 향후 목표를 “자체적으로 피해 복구를 추진하는 시민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곳에서 상시적으로 활동하는 인원은 약 25명. 기존의 나르사나트 구성원에 더해 인근의 방직노동자 노동조합과 노동당(EMEP) 구성원들도 합류한 상태다. 여건이 될 때마다 힘을 보태는 이들까지 합치면 구성원은 거의 100명에 육박한다.

활동가들은 튀르키예 정부가 재난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정부에서 발표한 튀르키예의 지진 사망자 수는 지난 18일까지 4만642명. 하지만 이는 구조·구호 인력이 집중된 도심 지역의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활동가들은 “실종자가 많은 교외 지역까지 제대로 집계하면 사망자는 1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가지안테프 도심은 이날 지진 이전의 평온한 일상을 어느 정도 되찾은 모습이었다. 부모들은 아이의 손을 잡고 쇼핑몰을 찾았고, 노인들은 한가롭게 공원 벤치에 앉아 행인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텐트가 들어섰던 자리도 상당수가 공터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일상을 회복한 것은 일부 도심뿐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데니스는 “교외에는 지금도 최악의 환경을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소외된 이들의 일상 회복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지안테프=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