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서 이유식 데워달라는 손님, 진상인가요 [사연뉴스]

국민일보DB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외식 한번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죠. 이유식 단계의 아이를 둔 부모라면 아이가 먹을 이유식을 따로 싸서 식당에 가는 경우가 많을 텐데요. 아마도 이런 부탁을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저기 죄송한데, 전자레인지에 아이 이유식 30초만 돌려주실래요?”
“아이 이유식 데우게 뜨거운 물 좀 주시겠어요.”

부모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탁일 텐데요. 이를 두고 난데없는 ‘민폐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부탁을 받는 식당 주인의 입장에서는 ‘진상 손님’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겁니다. 논란을 촉발한 건 지난 18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올라온 ‘식당 주인이 말하는 이유식, 진상인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라고 밝힌 글쓴이 A씨는 “정중하게 부탁하는 것도 진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유식은 외부 음식이어서 이유식을 식당 내에서 먹이는 것도 달갑지 않다. 식당에서 일어나는 일은 100% 식당 책임이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A씨는 “식당에서 이유식을 너무 뜨겁게 데워서 애가 화상이다? 소송 걸면 식당 측에서 책임져야 한다. 이유식이 차가워서 배탈 났다? 중탕할 테니 뜨거운 물 달라고 해서 줬다가 쏟아서 화상 입었다? 다 식당 책임이다. 웃기지만 법이 그렇다”고 성토했습니다.

네이트판 캡처

그는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외부 음식, 이유식이라는 존재 자체가 달갑지 않다. 이유식으로 식당 천(테이블보)을 더럽혀도 손님 측은 배상의무가 없는 게 법이더라”면서 “저도 처음엔 호의로 이것저것 해드렸지만 법과 상황은 결국 자영업자에게 불리하더라. 자영업자들을 조금만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해당 글은 단숨에 핫이슈가 됐습니다. 21일 오전까지 무려 2010명이 ‘추천’을 누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1100개에 육박하는 댓글도 달렸습니다. 반응은 ‘민폐가 맞다’고 동의하는 이들과 ‘너무 각박하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로 나뉘었습니다. 첨예한 갑론을박의 상황을 한번 살펴볼까요.

한 네티즌은 “다 애엄마들이 만든 거다. 자기 아이들이 가해자인데 (무슨 일이 생기면) 적반하장으로 돈 달하고 하니 이렇게 각박해지잖나”라며 A씨 의견에 동조했습니다. 반면 또 다른 네티즌은 “이유식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닌데 참 각박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노키즈존’으로 운영하라”고 비판했습니다.

동네에서 파스타 식당을 운영한다는 한 네티즌은 “나도 초등학생 아이가 둘인 엄마라서 이유식 데워주는 게 싫지는 않다”면서도 “아기들이 이유식을 깨끗하게 먹지 못하고 흘리거나 뱉으니까 그걸 본 다른 손님들이 비위 상한다고 항의하는 경우가 꽤 많다. 참 곤란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세태를 한탄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갓 세상에 태어나 아직 어른 음식 먹을 수 없는 아기들을 어쩔 수 없이 따로 먹이는 것도 진상이 되나. 각박한 세상이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이는 “이런 나라에서 누가 애를 낳겠나. 저출산 탓할 거 없다”고 혀를 찼습니다.

네이트판 캡처

이런 와중에 7년째 식당을 운영 중이라는 B씨는 ‘식당하는데, 이유식 괜찮아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주목받았습니다. 7년째 식당을 운영 중이라는 B씨는 “아이 이유식 데워줄 수 있냐고 묻는 손님에게 나는 ‘당연하죠’라고 대답한다. 덜어 먹일 그릇이랑 아이 숟가락이 필요한지도 물어본다”고 운을 뗐습니다.

그는 “따지고 보면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진상 떠는 손님들보다 그냥 진상이 훨씬 많다”면서 자신이 겪은 사례들을 나열하기도 했습니다. “더치로 계산한다고 7만원을 카드 6개로 나눠 계산해 달라는 분, 회식한다고 막걸리 몇 병을 마트에서 사다 달라는 분, 서빙 중 다른 테이블에서 불러 ‘잠시만요’ 했더니 음식 놓으면서 말했다고 침 튀겼을지 모르니 다시 만들어 오라는 분….”

B씨는 “아이 있어서 안 오는 손님보다는 데리고라도 와주는 손님이 더 반갑다”면서 “아이 키우며 집에서 제대로 본인 밥 한끼 차려 먹기도 힘든 거 아이 키워 본 여자들은 안다. 아이 데리고 모처럼 외식 나온 가족들에게 뭐 그렇게 눈치를 주나. 애 데리고 외식하는 부모들, 상식적인 수준 내에선 요구하셔도 괜찮다”라고 전했습니다.

B씨의 글에는 “누가 옳고 그른지 답 없는 문제에 일단 님의 마음 씀씀이는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번창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라는 댓글이 600여명의 공감을 얻으며 ‘베플’(베스트 댓글)에 올랐습니다. 물론 이 글에도 “남에게 피해주는 건 진상이 맞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 “애엄마보다 진상 애엄마 만난 사장님들이 더 불쌍하다” 등 반대 의견도 달렸습니다.

어느 네티즌의 말처럼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누가 옳다 그르다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부탁을 하는 입장이든 받는 입장이든 정중하고 예의 있는 태도로 서로를 대한다면, 즐거워야 할 식사 자리에서 마음이 상할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사연뉴스]는 국민일보 기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접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더 풍성하게 살이 붙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반전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연의 흐름도 추적해 [사연뉴스 그후]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연뉴스]는 여러분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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