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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비긴즈[EP2]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 사역은 온기를 남긴다

하나님 위한 정규직 일꾼 꿈꾸지만 현실은 비정규직 사역자
사임 마무리의 아쉬움, 성도들 향한 감사로 달래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 사역은 온기를 남긴다

교회는 부목사를 채용해 ‘사역’이란 이름의 업무에 투입시킨다. 대부분 2년 계약직이다. 길면 3년, 잘하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본질은 안정보다 불안정에 가깝다. 세상 속 일터와 사역 현장을 비교하는 건 은혜와 감사보다는 자괴감과 실망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역 현장에 있는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소명이라 생각하며 임하는 일에 멈춤이 없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정규직 사역자’가 되고 싶다는 사실 말이다.

부목사로 사역하던 1년 차 교역자 회의 때 일이다. 담임목사님께서 내 이름을 꺼내시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혼났다. 단호한 어조였다.

“Y목사는 전임 목사처럼 1년 뭉개지 말고 2년 차 되면 10월에 목양실 와서 어떻게 할지 얘기해!”

‘목사 둥절’했다. ‘뭉개다니? 전임 목사님이 무엇을? 아니면 내가? 그것도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앞뒤 설명도 없이?’ 이런 상황에서 1년 차 부목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동안 사역해 온 돌다리를 두드려가며 스스로 수정과 보정을 거치며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2년 차 10월이 되었다. 목양실에 찾아갈 날만을 기다렸다. 10월의 어느 날. 담임목사님께서 부목사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먼저 물어보셨다.

“Y목사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 목사님께 내 대답을 토스했다. “목사님께서 결정해주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예의’라는 이름의 포장지로 감싼 거짓말이었다. 실은 다른 교회에서 사역해보고 싶었다. 정말 그랬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여전하고 다른 교회들 현실도 마찬가지일 테니 하던 사역, 1년 더 하는 걸로!” 탈출 실패였다. 양가적인 마음이 들었다. 좋기도 안 좋기도 했다. 다시 부목사로의 1년이 시작됐다. 그렇게 또다시 1년이 흐른 2021년 10월. 이제는 정녕 결론을 내려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마음속에 품었던 ‘개척 농사꾼’으로서의 결단이었다. 19년. 울타리를 떠나 다른 울타리를 만들기 위한 결단을 내리기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담임목사님과 면담을 청했고 앞으로의 사역에 대해 진지하게 마음을 표현했다. 대화의 결론은 ‘사임과 개척 준비’였다. 사역 일정은 12월 어느 주일 저녁 예배까지로 조율됐다. 감사했다. 드디어 탈출이다.

사역지로 19년을 몸담았던 교회에서의 마지막 날. 설교를 위해 부서 예배당 강단에 올랐다. 순간 울컥했다. 눈물이 나서 어떻게 설교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찬양을 하면서도 울었다. 내 속에 담기에 너무 벅찬 아이들의 눈이, 그리고 웃음과 눈물이 한 조각 한 조각이 되어 거대하고 감동적인 퍼즐로 예배당 공간을 채웠다. 많은 기도에 눈물이 있었고 선물에는 사연이 있었다. 숱한 악수에는 잊을 수 없는 온기가 있었고, 나를 살포시 안아주는 가슴들은 터져 나오지 않는 속울음으로 들썩였다.

탈출이라고 생각했던 내 마음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깊이 흐르는 시간이 있었다. 매 주일 아침마다 이 아이들을 만났고 이 아이들이 졸업하고 다시 교사가 된 시간들 또한 너무 감사했다. 잘해온 것 같았다. 그런데 모자랐다. 더 주지 못했고 더 시간을 내지 않았다. 더 함께하지 못함이 떠올라 미안했다. 그렇게 복잡하게 휘몰아치는 마음을 부여잡고 사진을 찍었다.

부서 예배를 마친 뒤 성도들을 마주했다. 1부 예배를 드릴 때 내 사임 소식을 들은 성도님들이었다. 축복 아쉬움 기대감이 재료가 되어 한데 비벼진, 양푼 비빔밥 같은 대화들이 이어졌다. 울면서 악수를 청하는 성도들도 있었고 “목사님 어떻게 저희를 떠날 수가 있어요. 다시는 안 볼 거예요”라며 울먹이면서 안아주는 분도 계셨다. “저녁 예배까지 드리시냐”고 물어 봐주시던 분은 결국 저녁 예배 때 뵙지는 못했다. 그냥 인사였나보다.

대예배실로 향했다. 2부 예배 때 인사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선배 목사님 말씀대로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광고 시간이 다가왔다. 준비한 인사말도 있었다. 담임목사님께서 짧게 내 사임에 대해 말씀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시켜주셨다. 끝이었다. 정말 끝이었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그 자리에 없었다. 청룡영화상이나 연말 시상식 수상 소감 같은 시간을 기대했을까. 아니다. 20년 가까이 머물렀던 공동체를 떠나 신앙의 새 울타리를 마련할 한 일원으로서의 감사와 인사를 전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씁쓸한 마음, 섭섭한 마음이 아주 조금 들었다. 다행히 빨리 사라졌다.

사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남은 두 달의 예배, 매일 일어나는 일상들 그리고 관계들은 참 고마웠다. 날마다 소중하게 대했고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다. ‘말년이니까 대충?’이라는 마음은 없었다. 참 신기했다. ‘나 같은 사람이?’ 약간 대견했다. 어느 조직이든 탈출하고 싶으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이전보다 하는 일이 줄어들면 무료함도 클 텐데, 내겐 그 시간이 느리게 흘러서 좋았다.

사역으로든 성도의 신앙적 교제나 상담으로든 이전과 동일한 나날이 이어졌다. 성도님 중엔 더러 “목사님 좀 쉬셔도 돼요”라는 말도 해주셨지만 내게는 그 어느 시간보다 쉼 같은 시간이었다. 수천, 수만 번을 오갔던 예배당인데도 ‘햇살이 이렇게 따뜻하게 들어왔나’ 싶었고, 드문드문 먼지가 낀 장의자에 홀로 앉아 기도하시는 권사님의 뒷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아직도 의문이다. 생각해보니 이곳이 좋았나 보다. 그렇게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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