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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사역만 20년차인데···예배가 무서웠다[개척자 비긴즈]



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네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족과 함께 가정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면서 개척교회를 준비하는 목회자? 이건 분명 아니었다. 뭔가 잘못됐다. 개척 공동체엔 목회자 가정이 기본 옵션이다. 그런데 마치 다른 성도들이 기본 옵션, 목회자 가정은 추가 옵션인 양 개척을 준비했다.

‘개척 1호 성도가 아내고 딸인데….’ 이 진리를 찾아 바보 온달처럼 헤매고 있을 때 평강공주 같은 아내의 말 한마디가 화살처럼 꽂혔다. “우리 가정예배부터 드려요.” 5월 어느 수요일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어색하게 거실에 둘러앉아 예배를 시작했다. 짧은 기도에 이어 함께 묵상할 성경 구절을 펼쳤다. 순간 딸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갈 길을 잃은 손이 다니엘서를 찾아 신약성경 앞뒤로 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목회자의 자녀인데 성경 말씀을 찾는 게 서투른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니···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사역을 맡았던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말씀 찾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던 내 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촤르르 흘렀다. 목양의 울타리에서 어린 양들을 위해 꼼꼼하게 PPT 파일을 준비하고 성경 말씀을 프린트해서라도 예배가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했던 나였다. 그런데 가장 가까이에 있던 가정 안 어린 양에겐 말씀 찾는 법을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다.

설교할 땐 더 큰 난관이 닥쳤다. 딸은 하품을 하고 아내는 갸우뚱한다. 망했다. 우리 가족의 ‘우당탕탕 가정예배’는 이렇게 시작했다. 가정예배를 드리기로 한 수요일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떤 본문으로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막막했다. 교회를 개척했다고 가정하고 상황을 그려보니 아찔했다. ‘개척? 이게 맞는 길일까?’

고민과 기도가 겹겹이 쌓여갈 때쯤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뭐가 문제일까 생각만 하다가 딸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짧고 간결했고 명쾌했다. “설교가 길어서 지루했다고요.” 내 앞에 선 딸의 모습이 ‘일타강사’처럼 보였다. ‘그래! 구독자 수백만의 유튜브 콘텐츠도 길어야 20분 정도다.’

준비하던 설교문을 다시 펼쳤다. 읽고 줄이고 또 읽고 줄였다. 다음 번 가정예배에서 19분짜리 설교를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두 분 성도님의 얼굴에 ‘만족’이란 이름의 꽃이 피어 있는 걸 봤다. 마치 예수님을 만난 것 같은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예배를 통해 개척교회의 그림이 조금 더 그려졌다.

단지 설교 길이의 문제였을까. 아니다. 주일예배의 풍경도 사역자와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가 180도 다르다. 사역자는 한 주가 시작되는 화요일부터 비상이다. 사실상 쉬는 월요일을 제외하곤 매일이 비상이다. 토요일은 주일 준비로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고 주일까지 이어진다. 코로나19로 시시각각 변화되는 방역지침에 따라 대응을 해야 하는 일로 과거의 주일보다 분주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팬데믹 전에도 우리 가정은 주일에 서로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스쳐 지나가며 인사 정도만 했지 한 번도 같이 예배를 드린 적이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더라도 한자리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이런 주일을 보내다가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릴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예배당의 셧다운이었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교회에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사역자 가정도 유튜브로 예배를 드려야 했다.

하지만 한 지붕 한 가족도 예배 시간엔 홍해가 갈라지듯 갈라져야 했다. 장년예배와 주일학교 예배가 나뉘다 보니 다시 방과 방으로 떨어져서 서로 예배를 드렸다. 가정예배가 없었다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예배드릴 때 비로소 찾아오는 은혜와 감격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가정이 하나의 예배 안에서 느끼는 소중함을 알게 됐다.

우당탕탕 개척자가 갈 길을 잃고 삽질하다 지쳐있을 때 주님은 ‘가정예배’부터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을 내어주셨다. 아내가 반주하고 딸이 바이올린을 켜며 내가 기타를 들어 찬양할 땐 브레멘음악대가 부럽지 않다. 행복한 시간이다. 진리의 깨달음도 빼놓을 수 없다. 설교 시간 대비 여운이 길수록, 메시지에 공감하는 연령이 낮을수록 가슴에 은혜가 물들 확률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딸이 웃으면 성공한 예배였다. 그렇게 웃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지만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인도하셨고 나를 다시 살리셨고 우리 모두를 살리셨다.

다시 그 시절 기억을 사진첩에서 꺼내듯 꺼내 본다. 개척자가 아닌 ‘부교역자 Y’ 시절의 주일 루틴은 아침 6시 기상으로 시작됐다. 오전 9시 중고등부 예배 인도로 출발하는 주일 사역을 위해 숨 가쁘게 맞이하는 아침이었다. 차량 운행도 겸하고 있었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첫 운행 장소부터 밀려 예배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까지 아슬아슬했다.

아이가 나와 있지 않으면 시한폭탄을 손에 든 것처럼 심장이 쫄깃해졌다. 기다릴 수 있는 시간엔 한계가 있다. 미리 연락까지 했지만 아이들의 예배 준비는 늘 쉽지 않다. 때로는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다. 전쟁 같은 차량 운행을 마치고 나면 곧바로 예배가 시작된다. 실은 도착하지 않은 우리 없이 예배가 시작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찬양팀의 찬양이 시작되고 나면 아이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담으려 사진도 찍고 영상도 담았더랬다.

‘개척자 Y’가 되고 나선 매주 그렇게 찍은 사진을 보며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고 별 표정 없던 아이들의 찬양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사진을 보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수줍음을 딛고 언젠가부터 손을 조금 올리고 찬양하는 모습, 입은 작게 벌렸지만 최선을 다하는 기도, 선생님들의 반가운 인사 뒤에 보이는 씁쓸한 웃음, 모임 시간에 핸드폰만 보고 있는 아이들, 작은 간식 하나에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던 모습들, 수련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 뒤섞여 있는 신발 속에 자신의 신발을 어떻게 저리 빨리 찾아 나갈 수 있을까 생각되던 한 아이의 모습, 시험 기간 중 부모님의 믿음보다 더 좋아서 예배 참석을 위해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던 아이들. 시간이 멈춰 버린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예배를 디자인해야 할지 참 많은 고민을 했었다. (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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