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쓰지 말라니요!” 대책 없는 ‘물소음’ [사연뉴스]

정부·지자체 조정 안 되는 ‘물소리’ 분쟁
공동주택소음규칙 “물소리는 소음서 제외”

국민일보 그래픽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서 층간 소음 분쟁은 매일같이 벌어집니다. 보통은 ‘발망치’가 원인이죠. 이웃끼리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에 온도 차는 있겠지만, 층간 소음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위원회·상담실을 통해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샤워하고, 세탁하고, 변기 물을 내리는 ‘물소음’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지난 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물소음’ 문제로 이웃의 항의를 받은 4층짜리 빌라 주민 A씨의 사연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A씨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항의한 이웃은 A씨의 아랫집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웃은 A씨의 집에서 사용한 물이 배관을 타고 내려가는 소리에 대한 불편을 호소했습니다. 항의를 받는 선에서 끝났다면 A씨도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다른 회원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겠지요. A씨를 답답하게 만든 건 “물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이웃의 요청이었습니다.

이웃의 요구는 조금 더 구체적이었습니다. “샤워는 이틀에 한 번만 해주세요.” “밤늦게 양치나 세수는 하지 말아 주세요.” 이웃은 그러면서 A씨에게 물소음을 줄이지 않으면 자신도 물소리를 내 시끄럽게 하겠다며 보복 소음을 예고했다고 합니다.

A씨는 “살다 살다, 물소리가 시끄럽다고 살 수가 없다는 것인가. 20층짜리 아파트 입주민들은 어떻게 참고 사는 것인가”라고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반문하면서 “대낮에 물소리만 신경 쓰면서 살기 위해서는 집에서 숨만 쉬고 누워 있어야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A씨는 아랫집 이웃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게 너무 답답했습니다.

아마도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거주자 일부는 A씨, 혹은 그의 아랫집 이웃과 같은 ‘물소음’으로 고충을 겪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물소리가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층간 소음 조정·중재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주택에서 발생하는 물소리는 법적인 ‘층간 소음’이 아닌 탓입니다.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는 2014년 6월 3일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을 제정했고, 지난 1월 2일 개정했습니다. 이 규칙의 제2조에서 ‘욕실, 화장실 및 다용도실 등에서 급수·배수로 인하여 발생하는 소음은 층간 소음의 범위에서 제외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따라서 층간 소음으로 갈등을 겪는 당사자들은 물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는 정부·지자체에서 이웃 간 층간 소음 조정·중재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정부도 ‘물소음’ 관련 민원을 숱하게 받아왔습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급·배수 소음은 갈등 당사자들이 구조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문제”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화장실 배관 등의 시설물은 건물 설계·시공 단계에서 정해진 구조여서 층간 소음으로 다투는 당사자들 간 조정과 중재를 통해 해결하기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이 관계자는 “배수 소음이 층간 소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당사자에게 안내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소음을 측정할 때도 화장실 문을 닫고 측정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운영하는 한국환경공단도 ‘물소음’을 놓고서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단 관계자는 “물소리는 층간 소음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 접수 시 ‘반려 처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A씨의 사연을 들어준 커뮤니티 회원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이웃 간 소음 분쟁에서 저마다 가‧피해자가 될 수 있다 보니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소리는 층간 소음에 해당하지 않는다” “신경 쓰지 말고 자유롭게 사용하라”는 조언 사이에서 자신을 다세대주택 거주자라고 소개한 한 회원은 “내 방 전체가 수족관이 된 것처럼 소리가 크게 울린다. 적당히 늦은 시간이라면 (물을) 조절해 써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때론 격한 의견도 내놓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오히려 침착한 해법도 제시됩니다. “우선 집주인에게 찾아가 얘기해보라”거나 “다른 세대 주민 의견을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라는 조언도 있었습니다. 마냥 참으라거나 참지 말라는 건 정답이 아닐텐데, 모두를 만족시킬 해법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사연뉴스]는 국민일보 기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접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더 풍성하게 살이 붙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반전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연의 흐름도 추적해 [사연뉴스 그후]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연뉴스]는 여러분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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