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된 ‘조리흄’ 위협…급식조리실 등장한 필터마스크

학교 급식종사자 10명 중 3명 폐 이상소견
공기처럼 떠다니는 초미세 물질 ‘조리흄’ 원흉
환기 개선 등 시간 걸려…‘필터마스크’ 찾아쓰는 노동자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4일 교육부는 학교 급식종사자 10명 중 3명이 폐 결절 등 이상소견을 보였다는 폐암 건강검진 중간 결과를 내놨다. 서울·경기·충북교육청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교육청 소속 학교 급식종사자 중 55세 이상이거나 근무 경력이 10년 이상인 2만4065명이 대상이었다. 이상 소견 중 폐암 의심 소견은 139명(0.58%)이었고, 이들 중 31명은 결국 폐암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앞서 2018∼2022년 폐암 진단을 받은 급식노동자는 29명으로, 최근 5년간 폐암에 걸린 급식종사자는 60명에 달한다. 아직 최종 검진이 마무리 안 된 서울·경기·충북 지역까지 포함하면 폐암 확진자는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빠진 상태로도 최근 5년 급식종사자의 폐암 유병률은 10만명 당 135.1명으로, 국가 암 등록 통계상 유사 연령의 5년 유병률(122.3명)의 1.1배로 집계됐다.

이처럼 급식노동자들의 폐암 위험도가 높은 원인으로는 초미세 발암물질인 ‘조리흄’(cooking fumes)이 지목돼 왔다. 조리흄은 고온에서 튀김이나 볶음, 구이 요리를 할 때 발생한다. 음식을 조리하는 급식실에서 원천 차단할 길은 없는 셈이다.

교육부는 올해 급식실 내 환기 설비 개선이 필요한 학교들에 1억원씩 지원하는 등 환경 개선 사업에 이제 나선다는 입장이다. 당장 매일 아이들과 학교 교사들의 식사를 만들며 노출되는 조리흄의 위협에 필터마스크를 찾아 쓰는 급식노동자들도 나온다.

‘조리흄’ 이 더 위험해지는 곳 …기름·고온·많은 양 만드는 급식실
교육부와 강득구 의원실이 각각 발표한 ‘학교 급식종사자 폐 CT 검진 중간결과’ 자료를 참고해 재가공한 표(서울과 경기, 충북교육청은 검진 진행중, 단위: 명). 서지영 인턴기자

‘조리흄’은 지방이 함유된 조리 기름(cooking oil)을 활용, 고온에서 요리하는 튀김류 등을 조리할 때 많이 발생하는 초미세 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가 낸 2010년 보고서에서 폐암을 일으키는 위험 요인으로 명시됐다.

그런 조리흄이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건 2021년 2월 폐암으로 숨진 급식노동자가 처음으로 산재를 인정받으면서다. 근로복지공단은 숨진 노동자가 12년 이상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면서 조리흄에 장기간 노출됐다는 점에서 직업성 폐암으로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55세 이상이거나 조리 업무를 10년 이상하고 있는 급식노동자를 대상으로 매년 폐 CT 촬영을 하도록 건강진단 기준이 마련됐다.

그 결과 올해엔 검진 완료자의 약 32%(1만3104명)가 폐 이상소견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실과 교육부에 따르면 아직 최종 집계가 안 된 서울, 경기, 충북 검진 완료자 숫자까지 포함할 때 폐암 의심 소견(의심, 매우 의심 포함)을 받은 노동자는 336명(0.8%)에 달했다.

급식노동자들의 건강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안전보건공단은 2021년 4~11월 경남 지역 10개와 제주 지역 2개 등 12개 학교 급식실 조리실 환기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조리대 및 튀김기에서 다량의 조리흄이 발견됐다. 급식실에 설치된 캐노피 후드(오염물질을 제어하기 위한 상승기류에 유용한 후드)는 그런 조리흄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엔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특히 전체 공기를 순환시킬 수 있는 후드가 설치된 급식실은 없었다. 한여름철처럼 고온다습한 환경은 조리흄이 공기 안에 머물며 노동자들의 호흡을 공격하기 좋은 조건이었던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2021년 12월 국소 배기장치 설치기준 등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올해 학교 급식실 조리환경 개선책으로 환기 설비 개선에 예산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2021년 권고한 설비 개선, 이제 걸음마…조리흄 노출 시간도 관건
지난해 11월 25일 서울 성동구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샌드위치와 머핀 등 대체 급식을 받아 가고 있다. 연합뉴스

환기 장치 등 급식실 환경 개선은 조리흄 예방에 가장 근본적인 처방이지만, 문제는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는 점이다.

김미경 교육공무직본부 수석부본부장도 “환기설비를 개선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예산이 필요한데, 관련해 중단기 대책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5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경기지부 조합원들이 급식실 노동환경 개선 및 산업재해 추방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이민규 조직국장도 “설비 가이드라인대로 시범운영하고 있는 곳은 경남교육청밖에 없다”면서 “일부 교육청에 급식실 현대화를 위한 예산이 반영돼 있지만, 구체적으로 환기시설 규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가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교가 예산 지원을 받더라도, 실제 시설 공사는 방학 기간에 이뤄질 수 있다. 실제 현장이 개선되는 시점은 더 늦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예산 집행에 앞서 학교 급식실 작업환경이나 공기질 현황을 전면적으로 조사해 정확한 기준 등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하 또는 지상, 옥상 등 급식실 위치나 급식량을 비롯한 작업환경 등에 다 다른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 한인상 환경노동팀장은 “급식실 작업환경이나 공기질을 위한 장치 기준 등에 대한 파악은 조금씩 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4일 폐암에 확진된 학교 급식노동자인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들이 폐암 건강검진 결과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급식 현장의 노동환경 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력문제도 급식노동자들이 줄곧 매달려 온 부분이다. 조리흄에 장시간 노출되는 것도 폐암 위험을 키우는데, 한 명이 오래 근무하지 않도록 교대근무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다.

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 고지은 경기지부 노동안전위원장은 “현재 급식노동자들이 가장 크게 요구하고 있는 건 인력충원”이라며 “현재 시도교육청마다 배치기준(학생 수에 따라 정해져 있는 조리사 인원 기준)이 달라 공통된 기준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지아 직업환경의학과 조교수(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도 지난달 27일 ‘학교 급식종사자 폐암 산재 해법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인력의 적정 배치기준을 마련해 적절한 노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당장 피할 수 없는 조리흄의 위협… ‘에어 마스크’ 쓰는 노동자들

대전동산고등학교 급식노동자들이 쉐마의 ‘에어맥마스크’를 쓰고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쉐마 제공

다만 3월 새 학기가 시작된 학교 현장의 급식은 현재진행형이다. 조리흄의 위험성, 환경 개선의 필요성이 확인됐지만 아직 달라진 것은 없는 채 급식 노동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조리흄 속 발암물질 등을 거르는 효과가 있는 필터마스크 보급 등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대전동산고등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은 지난해 10월부터 필터마스크를 쓰고 급식 조리를 하고 있다. 이 학교 영양사인 A씨는 “‘(조리흄 때문에) 심하면 방독면까지 써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까지 나올 만큼 걱정들이 많았다”면서 “그런데 필터마스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동료들과 고민 끝에 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 학교 급식실에서 사용하는 마스크는 카이스트 연구소기업인 쉐마의 기능성 필터마스크인 ‘에어맥마스크’다. 교체용 필터를 통해 조리흄 속에 포함된 독성 미세입자와 포름알데히드 등 기름과 섞인 유독성 발암물질을 상당 부분 걸러낼 수 있다는 게 쉐마 측 설명이다.

실제 쉐마의 조리흄 관련 마스크 연구 사업은 지난 1월 대전·세종·충남(DSC) 지역 혁신 플랫폼 ‘리빙랩 공모사업’에 선정된 상태다. 쉐마 측 관계자는 “조리흄이 많이 발생하는 작업환경에서 급식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호흡기질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조리실 내 마스크 성능을 다각도로 테스트하고 있다”면서 “조리사에게 마스크 사용성 등 피드백을 받는 등 문제 해결 방안을 내놓는 과정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쉐마의 필터마스크는 홈페이지 할인 가격 기준 개당 5만원이 넘어 급식노동자 개개인이 구매하기엔 부담이 크다. 동산고는 학교가 마스크 구입을 예산으로 지원해 적극적인 사용이 가능했다. 영양사 A씨는 “산재에 관심이 많은 학교 행정실장님이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씀해줬기 때문에 우리도 ‘사고나기 전에 대비하자’는 마음으로 마스크를 찾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습하고 온도가 높은 조리실에서 필터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환기시설 등 환경 개선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A씨는 “당연히 불편하다”면서도 “당장 시설을 못 바꾸는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절박함”이라고 말했다.

서지영 선예랑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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