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플레이션에… 예전엔 “기다리세요”→요즘 “빨리 사세요”


직장인 구민형(41·가명)씨는 지난해 10월에 현대자동차 그랜저를 샀다. 원래는 한 달 뒤 출시하는 7세대 신형 그랜저를 살 계획이었지만, 가격이 많이 오를 거란 딜러의 얘기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고금리 여파로 최근 급등한 신차 할부 이자도 부담이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완전변경 혹은 부분변경 모델 출시를 앞둔 차량은 판매량이 줄어든다. 이왕이면 신형 모델을 사려고 하기 때문이다. 양심적인 딜러들은 구매 문의를 하는 소비자에게 신차 출시 소식을 귀띔하며 조금 기다렸다가 사라고 권유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구씨처럼 신형 모델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 기존 모델을 구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완성차 업체들이 대부분 신형 모델을 출시하면서 가격을 대폭 인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13일 아반떼 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했다. 19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아반떼는 신차 출시 직전인 지난달에 판매량 6021대, 지난 1월에 7807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아반떼의 월 평균 판매량(4792대)을 훌쩍 뛰어넘는다. 신형 모델 출시 전 판매량이 준다는 정설을 뒤집는 수치다. 신형 아반떼는 트림별로 가격이 기존보다 94만~156만원 인상됐다.

현대차 그랜저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상반기(1~6월) 그랜저의 월 평균 판매량은 5566대였다. 신형모델 출시 전달인 지난해 10월(4824대)에도 5000대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신형 모델 출시를 앞둔 차량의 판매량이 거의 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오른다는 건 과거엔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며 “최근 카플레이션(자동차+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신차 가격이 오를 거란 인식이 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형 그랜저는 기존보다 약 300만~600만원 올랐다.

실제로 현대차·기아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의 승용차 평균 가격은 약 5032만원으로 2020년(약 4182만원)보다 약 850만원 올랐다. 2년 만에 20% 이상 상승했다. 레저용 차량(RV)은 4178만원에서 4641만원으로 9.5% 올랐다. 기아는 같은 기간 승용차 3.8%(3309만→3434만원), RV 20.1%(3626만→4355만원) 각각 상승했다. 지난해까지 차량용 반도체 등 부품난이 이어지면서 ‘없어서 못 파는’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된 게 이런 현상을 부추겼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고, 인건비 부담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의 고급화 전략이 맞물리면서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

딜러들도 신차 출시를 앞둔 차량은 가격 인상을 대비해 판매를 서두르고 있다. 최근 기아의 일부 지점에서는 올해 연말에 출시되는 카니발 부분변경 모델의 가격이 대폭 인상될 것이니 기존 모델을 서둘러 출고하라고 주문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