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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도 비웠다”… SVB 파산에 스타트업 허리띠 ‘꽉’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간판이 지난 10일(한국시간)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본사 앞에 세워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벤처투자자(VC) 업계 관계자는 요즘 스타트업계를 보면 20년 전 ‘닷컴버블’ 붕괴가 생각난다고 했다. 경기침체와 고금리 여파로 이미 돈줄이 마른 상황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까지 파산하며 스타트업계는 그야말로 궁지에 내몰렸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위기감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다. 허리띠를 더 바짝 조이고 있다.

20일 스타트업 분석업체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 규모는 181억 달러(약 23조5445억원)다. 1년 전(488억 달러)보다 63%나 급감했다. 불과 2~3년 전만해도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들이 줄을 이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공급망 대란 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위기가 본격화됐다. 금리가 거침없이 오르면서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끊었다. 미국 스타트업 차트홉의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CNBC 방송에 “이미 금리상승과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계를 SVB 사태가 흔들어 놨다”고 토로했다.

한국 스타트업계에도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올해 1~2월 신규 벤처투자액은 5531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2조8322억원)보다 80.4% 줄었다. 300억원 이상의 대형 투자는 1월과 2월 각각 1건씩이 전부다. 지난해 1~2월에는 23건이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미국 VC와 미팅이 예정돼 있었는데 SVB 사태 이후 취소됐다. 투자 혹한기를 넘어 빙하기를 맞았다”고 토로했다.

SVB 사태 이후 본격적인 비용 절감에 돌입한 스타트업도 적지 않다. 미디어 스타트업 A사는 지난해 말에 직원을 최소인원만 남겼다. 손에 쥔 돈이 없으니 비품 구입이나 냉·난방비 등 사무실 관리 비용도 부담이 됐다. A사 대표는 “어차피 인력이 많이 줄어 지금 사무실에 있을 필요가 없다. 당장 투자를 받을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창업기업 입주 공간이나 공유오피스로 들어가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탕비실에 비치한 간식을 없애거나 직원에게 제공하던 주차 혜택을 줄인 곳도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때의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을 다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SVB 사태로 인해 투자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을 것이라는 우려가 깊다. 한 VC 관계자는 “SVB 사태가 한국 스타트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적다. 하지만 투자심리에는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투자 혹한기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어 유동성 위기를 겪는 스타트업이 속출할 것”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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