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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격차 입증한 日 야구, 이치로 망언 예언으로 바꿨다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오타니 쇼헤이가 22일(한국시간)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미국의 마지막 타자 마이크 트라웃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고 3대 2 승리를 확정 지은 직후 포효하고 있다. AP 뉴시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공들이었다”

17년 전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을 앞두고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주장이었던 스즈키 이치로의 인터뷰 내용이 입길에 올랐다. ‘앞으로 30년은 상대가 되지 않겠다고 느낄 정도로 확실하게 이기고 싶다’는 골자였다.

국내에선 ‘망언’으로 줄곧 회자됐던 이치로의 이 발언이 2023 WBC를 거치며 현실로 다가왔다. 대표팀은 일본에 13대 4 대패를 당했고 현 한국프로야구 최고 스타 이정후는 상대 투수진 구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22일(한국시간)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결승전은 여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이 종주국 미국을 3대 2로 꺾고 14년 만에 세계 최대 야구 제전에서 정상에 선 것이다.

결승전다운 명승부였다. 미국이 ‘3억 달러의 사나이’ 트레이 터너의 홈런으로 선취점을 내자 일본도 곧바로 동점 솔로포와 연속 안타, 볼넷 등을 엮어 역전했다. 4회엔 오카모토 카즈마의 대포로 한 점을 더 달아났다. 미국이 8회 카일 슈와버의 홈런으로 추격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일본엔 오타니 쇼헤이가 있었다.

9회 마지막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오타니는 시속 160㎞대 강속구와 각도 큰 슬라이더를 섞어 9회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미국 주장이자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동료인 마이크 트라웃을 풀카운트 끝에 삼진으로 잡아내는 승부가 백미였다.

대회 최우수선수(MVP)가 오타니에게 돌아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타자로 나선 7경기에서 타율 0.435 1홈런 8타점 9득점을 올렸다. 볼넷은 10개나 얻어냈다. 투수로서도 군계일학이었다. 결승전 포함 3경기에 등판해 2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86을 기록했다.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다른 나라들에서도 야구가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수상 소감까지 흠잡을 데 없었다.

빛난 건 오타니만이 아니었다. 이날 마운드에 오른 일본 투수는 오타니를 포함해 모두 7명이었다. 이들이 9이닝 동안 미국의 강타선을 맞아 내준 볼넷은 4개였는데, 이게 이번 대회 기간 일본이 한 경기에 허용한 최다치였다. 일본 투수진이 조별 라운드부터 결승까지 8경기를 거치며 내준 볼넷은 16개에 불과했다.

타선의 저력도 뒤지지 않았다. 좌익수 요시다 마사타카는 타율 0.409 2홈런 13타점으로 대회 타점왕에 올랐고, 1루수 오카모토 카즈마도 멀티 홈런에 3할대 타율로 뒤를 든든히 받쳤다. 곤도 겐스케는 기복 없이 꾸준한 타격으로 힘을 보탰고 침묵하던 무라카미 무네타카도 결정적인 순간 두 방의 대포로 팀을 건져냈다.

이처럼 투타 양면에서 압도적 전력으로 전승 우승을 거둔 일본의 ‘황금기’가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 가늠하긴 어렵다. 결승전에서 릴레이 역투를 편 일본 핵심 투수 7명의 평균 나이는 27.1세다. 다르빗슈 유 한 명을 빼고 다시 계산하면 25.5세가 된다. 5회 무사 1루 위기에서 트라웃과 폴 골드슈미트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낸 다카하시 히로토가 2002년생이다.

이치로의 인터뷰가 공개된 직후 한국 대표팀은 2006·2009 두 차례 WBC에서 일본을 네 차례 만나 4승 4패로 팽팽히 맞섰다. 라이벌이라 부르기에 모자람 없었다. 이후 10여 년 새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가벼운 도발이자 자극에 지나지 않았던 ‘30년 발언’은 이제 대표팀과 한국 야구를 향한 묵직한 물음표로 변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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