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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女를 어른들이 성폭행… 그 마을, 대낮에도 ‘싸늘’

사건 발생한 강원도 마을 가보니
피의자들 모두 이웃 주민들
피해자 부모 “시끄러워지면 여기서 살기 힘들어져”
피해자는 장애인 기관이 보호 중


지난 23일 찾은 강원도 평창의 한 마을. 평일 점심 때였지만, 대부분 가게의 불이 꺼져 있었다. 문 닫힌 곳도 여러 곳이었다. 가게 창문 틈 사이로 이방인의 방문을 살피는 등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한 마을 주민은 “원래는 활기가 넘치는 동네였다”며 “‘그 소문’이 돌면서부터 사람들이 밖으로도 잘 안 다니고 마을에 온기가 없어졌다”고 했다.

인구 60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 뒤숭숭해진 건 지난해 말부터였다. 마을에 사는 20대 여성 A씨가 같은 마을 50~60대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연루자가 10명이 넘는다는 얘기도 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뜬소문으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매일 같이 얼굴을 봐 온 이웃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소문은 점점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 A씨는 지적 장애를 갖고 있다. 다만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일상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지역 축제 등으로 마을이 바쁠 때면 A씨는 동네 곳곳의 가게에서 일을 도왔다. 그런 A씨에게 검은 손을 뻗은 건 바로 ‘이웃 아저씨들’이었다. 용의자 중에는 A씨가 일한 동네 한 상점 사장 B씨도 있었다. B씨 가게는 A씨 집과 도보로 500m도 안 되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여전히 영업 중이었지만, B씨는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은 사건에 대해 함구했다. “일이 벌어진 뒤에 와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범행은 A씨가 임신하면서 드러났다고 한다. 일부 마을 주민들은 “(A씨가 임신하면서) 가족들이 피해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경찰에 알렸다”고 전했다. A씨는 B씨 등의 범행 관련 기록도 남겨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를 참고해 DNA 조사 등을 통해 피의자를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소문이 수면 위로 떠 올랐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사건을 입에 올리길 꺼렸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피해가 돌아올까 경계하기도 했다. 동네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또 다른 주민은 얘기하는 내내 주변을 흘끗흘끗 둘러봤다. 그는 “괜히 또 이런 얘기 했다고 소문이 돌면 바로 매출에 타격이 온다”며 자리를 피했다. 60대 한 주민도 “여기도 조심스러운 게 (피의자 가족이) ‘누가 그런 얘기를 하느냐. 가만 놔두지 않겠다’하고 다녀서 말 못 한다”며 눈을 피했다.

모두가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 오히려 피의자들 목소리가 더 크게 감지됐다. 한 피의자는 범행 사실이 알려진 뒤 이웃 사람들에게 자신과 A씨가 연인 관계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경찰 조사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한 C씨도 줄곧 자기 혐의를 부인했다. 마을 요직에 있으면서 동네 일을 도맡아 했다는 그는 유서에 ‘억울하다’는 말을 남겼다. C씨 가족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C씨는) 그 아이가 누군지도 모른다. 경찰 조사도 받은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씨는 이미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 마을 주민은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든 죄가 없음을 증명해야지. 안타깝다”면서도 “(죄를)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다. C씨 가족이 소문내지 말라고 하고 다닌다”라고 말했다.

피해자인 A씨 부모 역시 말을 아꼈다. A씨 부친은 딸에 대한 수사 결과를 묵묵히 기다린다면서도, 사건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자체를 염려했다. 그는 “수사 중이니 (죄를 지은 이들은) 곧 처벌 될 것”이라며 “사건이 시끄러워지면 (우리도) 여기서 살기 힘들다. 다른 데로 가면 먹고살기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준강간 혐의로 1명을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숨진 C씨를 제외한 나머지 1명에 대해선 수사가 진행 중이다. 관련자가 더 나올 수도 있다. A씨는 현재 한 장애인 보호기관의 보호 아래 지내고 있다.

평창=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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