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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조승우는 고통·김주택은 광기…각각 다른 팬텀의 매력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3년 만에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
주·조연 가릴 것 없이 안정적 연기…관객은 기립박수 화답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에서 팬텀 역으로 출연한 조승우. 에스앤코

역시 ‘명불허전’이다. 13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은 긴 기다림을 보상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잘 짜인 스토리, 화려한 무대, 중독성 강한 노래로 유명한 작품의 명성을 재확인하는 것은 물론 한국 배우들의 뛰어난 기량에 기립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4일간의 프리뷰 공연을 마치고 지난달 30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 문외한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익숙한 작품이다. 가스통 르루의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19세기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흉측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 팬텀(유령)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리고 귀족 청년 라울의 러브스토리를 그렸다. 이 작품에서 1t 무게의 대형 샹들리에가 천정에서 무대 앞으로 곤두박질치는 장면과 팬텀이 크리스틴을 배에 태워 안개 자욱한 지하 호수로 노를 젓는 장면은 무대미학의 극치로 꼽힌다. 또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바램은 그것뿐’(All I Ask of You), ‘생각해 줘요’(Think of me), ‘그 밤의 노래’(The Music of the Night) 등 넘버들은 한번 들으면 선율이 입에서 맴돌 정도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앤드루 로이드-웨버 작곡, 해롤드 프린스 연출 등 쟁쟁한 제작진의 손에 의해 1986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억4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에서도 뮤지컬 시장의 저변을 확대한 상징적 작품이기도 하다. 2001년 초연 당시 7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관객 24만 명을 동원하며 뮤지컬 산업화의 시작점이 됐으며, 지금까지 2차례 한국어 공연과 3차례의 내한 공연 등 5차례 공연을 통해 누적 관객 15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2012년 내한공연 중 국내에서 단일 작품 최초로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파리 오페라하우스 지하 미궁으로 가는 팬텀 역의 김주택과 크리스틴 역의 손지수. 에스앤코

이번 ‘오페라의 유령’은 13년 만의 한국어 공연이기도 하지만 조승우 전동석 김주택 최재림 등 4명이 팬텀 역으로 캐스팅돼 개막 전부터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스크린과 브라운관, 무대를 오가는 전천후 배우이자 뮤지컬계에서 손꼽히는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조승우가 팬텀 역으로 7년 만에 새로운 배역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럽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약하다 JTBC 성악 예능 ‘팬텀싱어’에 출연한 김주택이 처음 뮤지컬에 출연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일 드림씨어터에서 ‘오페라의 유령’이 2차례 무대에 올랐다. 낮 공연은 조승우 손지수 송원근 그리고 저녁 공연은 김주택 송은혜가 송원근이 각각 주역인 팬텀, 크리스틴, 라울 역을 맡았다. 극중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팬텀을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가면무도회 장면에 출연 중인 라울 역의 황건하와 크리스틴 역의 송은혜. 에스앤코

조승우는 이번에 팬텀 역으로 캐스팅된 4명 가운데 유일하게 성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대체로 팬텀은 풍부한 성량으로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역할이지만 조승우는 호소력 짙은 창법과 정확한 발음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드러냈다. 이날 목 컨디션이 100%는 아닌 듯 보였지만 조승우는 베테랑답게 노련한 연기를 펼쳤다. 조승우의 대사에는 눈물이 묻어났는데, 흉측한 모습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는 등 평생 누구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팬텀의 고통과 슬픔이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크리스틴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라울에게 보내준 뒤 “크리스틴, 사랑해”를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리는 장면은 조승우 연기의 하이라이트였다.

조승우는 이날 공연이 끝난 뒤 제작사 에스앤코를 통해 “두려웠고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다. (역할이) 내 옷이 아닌가…. 수많은 편견, 선입견들과 싸우느라 홀로 지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많은 분이 용기를 주셨다. 많이 떨고 실수도 잦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무대에서 지킨 것 같다”는 소감을 전해 왔다.

한편 김주택은 테너에 가까운 고음을 소화하면서도 묵직하게 노래하는 바리톤으로 20대 후반의 나이에 이탈리아에서 정상급 오페라 가수 반열에 올랐다. 오페라 팬이라면 국립오페라단의 ‘시몬 보카네그라’나 ‘사랑의 묘약’ ‘라보엠’ 등에서 호소력 짙은 음색과 탁월한 표현력을 뽐낸 그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끼가 넘치는 그는 2017년 ‘팬텀싱어’ 시즌2에서 미라클라스에 속해 준우승한 뒤 방송과 콘서트 중심으로 활동 스펙트럼을 넓혔다.

지난 1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관객이 커튼콜에서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에스앤코

김주택이 이번에 그의 첫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또 다시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그는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폭발적인 성량과 압도적인 에너지로 크리스틴에 대한 팬텀의 집착과 사람들을 죽이는 등의 광기를 실감나게 그려냈다. 김주택은 제작사를 통해 “오디션부터 연습 그리고 프리뷰까지 안 올 것만 같았던 시간이 왔다. 생애 첫 뮤지컬 데뷔 무대를 마치고 만감이 교차했다. 첫 공연까지 함께 고생한 모든 분께 정말 감사드린다. 계속 열심히 준비해서 최고의 공연으로 찾아가겠다”고 전했다.

타이틀롤을 맡은 조승우와 김주택을 주로 다뤘지만 다른 배우들의 연기 역시 탄탄하다. 손지수의 크리스틴이 우아하다면, 송은혜의 크리스틴은 사랑스럽다. 또 송원근의 라울은 기품이 느껴진다. 이외에 윤영석 이상준 김아선 이지영 등 조연들의 안정적인 연기도 좋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부산 공연은 6월 18일까지. 7월에는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관객과 만난다.

부산=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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