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이나 맴돌았는데… ‘연인 보복살인’ 경찰 대응 논란

데이트 폭력 조사 1시간 만에
전 연인 찾아가 보복살인
피해자 보호 조치 등에 허점

데이트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모씨가 28일 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데이트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30대 남성이 풀려나자마자 자신을 신고한 전 연인을 살해한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경찰의 피해자 보호 조치 및 초기 대응에 구멍이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찰은 피해 여성의 첫 신고 당시 가해 남성의 보복 위험성을 ‘낮음’으로 판단했으나, 이 남성은 귀가 조치 1시간 만에 “신고해 기분이 나빴다”며 보복살인을 저질렀다.

2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피의자 김모(33)씨는 지난 21일 A씨(47)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는 A씨 주변을 맴돌다가 26일 새벽 시흥동 한 PC방으로 A씨를 불러내 다시 사귀자며 행패를 부렸다. A씨의 데이트 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김씨를 지구대로 임의동행해 23분가량 조사했다. 김씨는 오전 6시11분 풀려났는데, 다툼이 있던 PC방 지하주차장을 다시 찾아가 기다리다가 오전 7시17분쯤 A씨를 무참히 살해했다. A씨는 그 10분전 경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경찰이 피해자 분리 조치 등의 적극적 대응을 했다면 참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은 최초 신고 당시 A씨에 대한 김씨의 폭행 정도가 경미한 점, A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해 김씨의 보복 위험성을 ‘낮음’으로 판단했다. 위험도 등급은 ‘없음’부터 ‘매우 높음’까지 5단계로 분류되는데, 위험도가 ‘높음’ 이상이면 가해자의 신병을 구속하고 피해자에게는 신변경호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

경찰은 김씨와 A씨가 부부가 아닌 연인 관계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추가 접근을 막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법률혼·사실혼 관계일 경우 가정폭력범죄처벌법을 적용해 피해자에 대한 임시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매뉴얼상 두 사람은 단순 연인 관계였다는 것이다. 김씨는 구속 심사를 받으러 가면서 “평생 속죄하고 살겠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경찰의 이런 판단에 전문가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사실혼 여부를 떠나 경찰의 조치가 데이트 폭력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데이트 폭력 가해자는 경찰 앞에선 순응하다가 보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에게 이런 위험성을 충분히 알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해 접근금지 처분을 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조치가 필요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씨는 이별 통보를 받고 나흘간 A씨 주변을 배회했으며, 범행 하루 전인 지난 25일에는 A씨에게 ‘집에 와서 대화하지 않으면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실제 김씨는 이후 A씨 집 비밀번호를 바꿨다.

최근 데이트 폭력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경찰이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데이트 폭력은 사적인 영역이어서 경찰이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하면 민‧형사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적극적 대응을 위한) 근거 규정이나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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