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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는 연인에 ‘부재중 전화’ 28통…대법 “그건 스토킹”

“부재중 전화 문구 등 표시로 불안감 일으킨 행위는 스토킹 행위”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어 수십여 회 ‘부재중’ 기록을 남겼다면 “형사처벌이 가능한 스토킹 행위가 맞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제시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대법원은 “A씨가 전화를 걸어 피해자 휴대전화에 벨소리를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표시되도록 해 상대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킨 행위는 실제 전화통화가 이뤄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A씨는 2021년 10월 29일 연인 관계였던 B씨에게 사업자금 1000만원을 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B씨가 자기 번호를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 등을 통해 그해 11월 26일까지 29번 전화를 걸었다. 첫 전화를 빼고 나머지 전화를 받지 않아 B씨 휴대전화에는 28회 부재중 전화 기록이 남았다. A씨는 B씨 집 앞 사진과 함께 “내가 니를 어찌하는지 잘 봐라” 등 9차례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조사됐다.

1심은 A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2심도 마찬가지로 징역 4개월을 선고하기는 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계속 건 일을 스토킹 행위로 처벌할 수는 없다며 무죄 판단했다. 협박성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만이 스토킹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전화를 걸었다는 것만으로는 피해자에게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향’을 보냈다고 할 수 없고, ‘부재중 전화’ 표시는 전화기 자체 기능으로 스토킹처벌법에서 말하는 ‘글’이나 ‘부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한 차례 통화를 하기는 했으나 그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은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토킹 행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우연한 사정에 의해 처벌 여부가 좌우되게 하고 처벌 범위도 지나치게 축소시켜 부당하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와 전화통화를 원하는 내용의 정보가 벨 소리·발신번호표시·부재중 전화 문구 표시로 변형돼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나타났다면, 이 역시 음향(벨 소리)과 글(발신번호·부재중 전화 문구)을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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