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 ‘혀 깨문 죄’ 재심 해달라” 60년 지난 호소

60년 전 성폭행범 혀 깨문 혐의 최말자씨
법원, 정당방위 인정 안 해 성폭행 가해자보다 무거운 형
70대 돼 제기한 재심청구…대법원 앞 마지막 촉구시위

1964년 성폭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고의에 의한 상해'로 구속 수사 및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 씨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탄원서를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0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중상해죄를 적용받아 그 남성보다 더 높은 형을 선고 받았던 여성이 정당방위였던 당시 상황에 대해 다시 판단해달라며 재심을 호소하고 있다. 이제 70대가 된 이 여성은 대법원 앞에서 재심을 촉구하는 마지막 1인 시위를 벌였다.

1일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77세인 최말자씨는 전날 정오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후 최씨와 최씨 가족·지인 20명의 자필 탄원서와 시민 참여 서명지 1만5685장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최씨는 18살이었던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다치게 한 혐의로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처음 경찰 수사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인정하고 무죄 취지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검찰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빼고 중상해죄를 적용하면서 구속 수사로 전환했다.

최씨는 성폭행에 대항하고자 혀를 깨물었다는 점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구속된 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은 최씨는 6개월만에야 석방됐다.

더구나 최씨가 받은 형량은 성폭행을 시도한 상대 남성보다 높았다. 상대 남성은 강간미수죄를 제외한 특수주거침입·특수협박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56년 만의 미투'. 연합뉴스

최씨는 56년만인 2020년 5월 재심 청구에 나섰다. 당시 검찰이 미성년자인 최씨를 구속하는 과정에 변호인선임권 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영장없이 체포했으며, 피해자의 ‘순결성’ 감정이 증거로 채택되는가 하면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혼인을 강요하는 등 압박하는 등 위법 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다.

그러나 1심인 부산지법과 2심인 부산고등법원은 “시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며 최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 재항고한 최씨는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최말자 씨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씨는 이날 대법원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하급심 법원의 재심청구 기각 사유에 대해 “모든 재판에서 시대 상황에 따라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법원이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법 체제를 스스로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국가로부터 받은 폭력은 평생 죄인이라는 꼬리표로 저를 따라다녔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재심을 다시 열어 명백하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다시 정의하고 정당방위를 인정해 구시대적인 법 기준을 바꿔달라”면서 “그래야만 여성 폭력 피해자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더 이상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호소했다.

오기영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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