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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못 뽑아요”…‘장애인 석박사’ 모자라 의무고용 못 지킨다는 연구기관들

연구기관, ‘장애인 연구자 부족’ 구실로 의무고용 미달성 만연
지난해 전국 장애인 대학원생 400명에도 못 미쳐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장애인 의무고용률 미달성 문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연구기관들은 석·박사 학위를 보유한 장애인의 숫자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전국의 대학원에 재학 중인 장애 학생은 40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3년간 장애인 의무고용률 준수 등급 D-C-D
4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연)의 ‘2022년도 연구기관 평가결과’에 따르면 경인사연 소속 26개 연구기관은 지난해 ‘장애인 의무고용률 준수’ 항목에서 100점 만점에 평균 69.23점을 기록해 D등급을 받는 데 그쳤다. 해당 항목이 처음 독립한 2020년 D등급, 이듬해인 2021년 C등급에 이어 3년 내리 저조한 성적표를 손에 쥔 것이다.

경인사연은 경제·인문·사회 분야 연구기관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공공기관이다. 현행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은 상시근로자 50명 이상의 공공기관은 정원의 3.6%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경인사연 소속 26개 연구기관 중 11곳은 의무고용률 기준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신규 채용 실적 역시 저조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해당 26개 연구기관이 2018년부터 2022년 사이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한 장애인은 단 28명이었다. 매년 기관 하나가 정규직 한 명을 뽑는 데 그친 꼴이다.

그럼에도 경인사연 측은 장애인 연구인력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경인사연 관계자는 “연구기관 직원이 되려면 아무래도 석사나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장애가 있으면서 학위까지 가진 적임자를 기관 소재지에서 구하기는 어렵다”라고 미달성 이유를 설명했다. 경인사연은 지난해 평가결과 보고서에서도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개선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며 소속 기관의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상’ 된 부담금 납부…모시기 힘든 장애인 석박사
현행법상 직원수가 100명 이상인 공공기관은 의무고용 미달성 시 모자란 인원수에 약 120만원을 곱한 금액을 부담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경인사연 쪽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과학 분야 연구기관 사이에서는 ‘어차피 의무고용률은 지킬 수 없으니 부담금을 내면 된다’는 수준의 주객전도가 만연하다. 2021년에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의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22개 기관이 당시 의무고용률이던 3.4%를 달성하지 못했다. 자연히 부담금 규모도 커졌다. 해당 25개 기관을 포함한 51개 과학기술 공공기관이 2017년부터 5년간 장애인 고용부담금으로만 331억원을 납부했을 정도다.

연구기관들은 “공고를 내도 지원하는 장애인 연구자가 없다”며 “현실에 맞는 의무고용률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국내에서 장애인 연구자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대학생수와 대학원생수는 각각 311만7540명, 33만3907명이었다. 반면 같은 해 8월 전국 대학교에 재학 중인 장애 학생의 수는 9444명에 불과했다. 대학원까지 진학한 장애 학생은 그보다도 훨씬 적은 380명이었다. 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는 전체의 1.8%에 이르렀던 장애 학생 비율이 고등교육에서는 급락한다는 것이다.

국내에 얼마나 많은 장애인 석·박사가 존재하는지도 여전히 불분명하다. 정부가 장애인 연구자 현황에 대해 제대로 된 통계를 내놓지 않은 탓이다. 대표적 통계인 장애인실태조사마저도 학부 졸업생과 석·박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교육부가 장애 학생의 대학원 재학 현황을 파악하고는 있지만 이미 학위를 취득한 장애인들의 현황은 오리무중이다. ‘통계 부실’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과학 분야 현황 조사를 추진했지만 이 역시 예산 부족으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에 불친절한대학원
이들의 진학률이 저조한 최대 요인으로는 대학 내의 장애 학생 지원 부족이 꼽힌다. 교육부가 3년마다 진행하는 ‘2020년 장애 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 결과’에서는 전국의 423개 대학 캠퍼스 중 4분의 1이 넘는 117개 캠퍼스가 보통보다 낮은 ‘개선 요망’ 등급으로 분류됐다. 이듬해인 2021년 대학 진로교육 현황에 따르면 전국의 324개 대학 중 121개는 재학 중인 장애 학생이 10명 미만이어서 별도의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의 장애 학생 지원 사업은 설령 갖춰져 있더라도 학부생 중심”이라며 “실험 등의 활동이 요구되는 이공계 대학원 생활은 장애인들에게 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근래 개선된 장애인 고용지원 제도도 오히려 장애 학생이 대학원까지 진학할 동기를 줄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학부만 졸업해도 공공기관·민간기업에서 충분히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자 공부에 확고한 뜻이 있지 않은 장애 학생들은 구태여 대학원 진학을 시도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학원에서도 특별전형 등의 혜택을 확대해 장애인 연구 인력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현종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소통협력실장은 “장애인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연구기관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충분한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연구기관들도 학위가 꼭 필요하지 않은 경영지원 등의 직무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의무고용률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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