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가 낳은 ‘입법 모순’…전세사기 대책·실거주 의무 폐지 동시에?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으로 추진하는 실거주 의무 폐지 논의가 공전하고 있다.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무자본 갭투기를 차단하기 위해선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면서다. 다만 정부가 이미 정책을 발표해 분양 시장이 움직이고 있는 만큼 입법 논의가 지나치게 길어져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거주 의무는 부동산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2021년 2월부터 시행됐다.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은 입주 가능일로부터 2~5년간 해당 주택에 살아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는 단지를 4만4000가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2년 전 주택 경기 과열로 실거주 의무를 도입할 당시 정부는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진정한 실수요자에게 우선 공급할 필요가 있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 정책 방향은 주택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자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엄청난 불편을 준다”며 실거주 의무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180도 바뀌었다.

국토부는 실거주 의무로 인한 불편 사례를 4가지로 들어 제시했다. 첫 번째는 전세를 끼지 않고는 자금이 부족해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임대차 계약 기간이 남아서, 세 번째는 직장이 멀어서, 네 번째는 자녀 학교 적응 문제를 꼽았다. 이들 사례 중 첫 번째 사례는 전세금 미반환 등 사고 우려가 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주택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거주 의무를 삭제할 경우 분양가상한제 주택을 분양받은 자 또는 분양받으려는 자가 타인에 대한 임대를 통해 분양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고, 결국 분양가상한제 주택에 대한 비(非) 실거주자 수요 억제가 어렵게 되므로 거주 의무제도의 도입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점 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자본 갭투기로 인한 전세사기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갭투자를 허용하는 방향의 실거주 의무 폐지는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국토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전세사기, 깡통전세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무자본 갭투기다. 그런데 실거주 의무 폐지가 전세사기나 깡통전세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미 정부 정책이 발표된 만큼 국회가 실거주 의무 폐지나 유지에 대한 결정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6일 “지난 1월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을 발표한 이후 이미 시장이 개정안 통과를 전제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법이 개정될 때까지 무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또다시 수요가 얼어붙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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