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 우리집 정수기에서 핵오염수가 나온다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녹색연합과 '이제석광고연구소'가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정수기를 소재로 활용한 '누구도 마실 수 없는 핵오염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한형 기자

“이 정수기에서 나온 물을 마실 수 있겠습니까”

정수기 배달원 차림의 남성이 7일 오후 1시31분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맞은편 도로에 초록색 물감이 흐르는 정수기 한 대를 설치했다.

정수기에는 푸른 생수통 대신 ‘FUKUSHIMA WATER(후쿠시마 워터)’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색 통이 꽂혀 있었다. 빨간 확성기를 든 남성이 “이 정수통에 오염수가 있다면 마실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시민들은 “아니요”라고 답했다. 이 장면은 녹색연합과 ‘이제석광고연구소’가 함께 기획한 ‘핵오염수 정수기 배달 퍼포먼스’였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녹색연합과 '이제석광고연구소'가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정수기를 소재로 활용한 '누구도 마실 수 없는 핵오염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한형 기자

이 퍼포먼스는 일본이 방출하려는 핵오염수에 대한 부실한 검증 방식을 비판하고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퍼포먼스를 진행한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느리고 조용한 핵테러’라고 규정했다.

그는 “최근 국책 연구기관 초청 자리에서 웨이드 앨리슨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오염수를 당장 마실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최근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은 우럭에서 기준치 180배가 넘는 세슘이 검출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오염수가 정말 깨끗하다면 일본 총리나 당국 관계자가 직접 이 오염수를 마실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안전하다면서 왜 일본 내에 계속 보관하지 않고 방출하려 하느냐”고 따졌다.

황 팀장은 이어 “당연히 아무도 마실 수 없는 위험한 물이기 때문”이라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본의 거짓말에 반대하고자 핵오염수 정수기를 일본 대사관까지 배달하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를 하게됐다”고 설명했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녹색연합과 '이제석광고연구소'가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정수기를 소재로 활용한 '누구도 마실 수 없는 핵오염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한형 기자

이후 정수기 배달원 차림의 ‘이제석광고연구소’ 이제석 대표가 핵오염수 정수기를 소녀상에서 약 265m 떨어진 일본 대사관 앞까지 배달했다. ‘누구도 마실 수 없다. 일본 오염수 해양 투기 즉각 철회하라’는 구호와 함께 녹색연합 공식 입장문을 일본 대사관에 전달하는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황 팀장은 일본 대사관 앞에 도착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는 올 여름 예고한 방사성 오염수 해양 투기를 강행하려고 한다”며 “한국과 일본의 어민을 비롯한 전 세계 시민과 전문가들이 꾸준히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도 일본 정부는 부실한 근거로 안전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핵산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의 지지를 방패 삼아 결과가 정해지는 그들만의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오염수 방출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에 대해서도 불신을 표했다. 황 팀장은 “일본 정부의 오염수 해양 투기를 검토한다는 IAEA 역시 핵의 평화적 이용과 핵발전 진흥을 위한 국제기구다. 2015년 오염수 해양 투기를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며 “이런 IAEA가 시민의 안전과 해양생태계의 영향을 엄정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녹색연합과 '이제석광고연구소'가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정수기를 소재로 활용한 '누구도 마실 수 없는 핵오염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강민 기자

이어 “바다는 핵쓰레기장이 아니다. 누구도 핵오염수로 전 세계의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권리는 없다. 국제해양의날을 하루 앞둔 오늘 일본 정부가 지금이라도 핵오염수의 해양투기를 중단하고, 다른 대안을 선택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규탄했다.

일본 대사관은 이날 경찰을 통해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 투기 관련 입장문 수령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직접 입장문을 전하는데 실패한 녹색연합은 우편이나 메일을 통해 일본 대사관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번 퍼포먼스는 플랜카드 없는 사실상의 1인 시위 형식으로 진행됐다.

점심시간에 나왔다가 이 장면을 지켜본 직장인 배윤지(28)씨는 “일본은 오염수를 희석하면 문제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오염수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몰라 우려된다”며 “평소 회를 좋아하는데 방류가 시작되면 당분간은 먹기 꺼려질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A씨는 “일본 오염수 방출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잘 몰랐는데 퍼포먼스를 통해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앞으로 이런 퍼포먼스를 계속 하면 시민들이 경각심을 갖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7일 일본 대사관 옆에서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공동행동 연합회가 오염수 해양투기 금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강민 기자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이날 오염수 해양투기 금지 서명운동도 진행됐다. 서명에 참여한 영국인 관광객은 “바다를 지키는 것은 전세계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오염수 투기 금지 서명 운동에 사인했다”고 말했다.

서명 운동을 이끄는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공동행동 연합회’는 “지난 2일 시작해 13일까지 진행한다”며 “하루에 40~50명 정도 서명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를 전부 모아서 정부에 시민들의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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