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개막한 연극 ‘기생충’에 지진 나오는 이유는?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봉준호 감독의 동명 영화 무대화
1990년대 중반 간사이 배경… 비 대신 지진이 빈부격차 드러내는 요소로

일본에서 공연 중인 연극 ‘기생충’의 한 장면. 분카무라

지난 6일 도쿄 신주쿠의 새로운 마천루 가부기초 타워. 지난 4월 문을 연 엔터테인먼트 특화 복합건물로 900석의 씨어터 밀라노자가 개관 이후 두 번째 작품을 전날인 5일 개막했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동명 영화를 토대로 만든 연극 ‘기생충’이다.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과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재일교포 극작가·시나리오 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이 대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후루타 아라타, 미야자와 히오, 이토 사이리, 에구치 노리코, 기무라 미도리코, 야마우치 다카야, 아키 요코 등 무대·드라마·영화를 오가는 인기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이번 공연은 추첨을 통해 티켓 구입 자격을 준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빈 좌석이 아예 없었다. 대신 공연마다 10장이 채 나오지 않는 당일권을 사려는 사람들로 극장 내 티켓박스 앞에 긴 줄이 만들어졌다.

연극 ‘기생충’은 동명 영화를 무대화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일본 간사이 지방으로 시·공간적 배경이 바뀐 것이 특징이다. 출연진은 모두 억양이 강한 간사이 사투리를 쓴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한국의 반지하 주택이 없기 때문에 영화 속 기택(송강호)에 해당하는 가네다 분페이의 가족은 제방 아래 함석집 마을에 살며 가내 수공업으로 신발을 만든다. 강의 수위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마을은 제방 때문에 종일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지상이지만 지하와 같다. 이와 대칭돼 영화 속 박사장(이선균)에 해당하는 나가이 신타로의 가족은 고지대의 호화 저택에서 산다. 연극은 회전무대를 활용해 저지대 가네다 가족의 집과 고지대 나가이 가족의 집을 오간다.

일본에서 공연중인 연극 ‘기생충’의 포스터.

영화 ‘기생충’에서 빈부격차를 묘사하는 소재로 냄새와 함께 비가 사용된다. 폭우가 쏟아지자 반지하 주택은 물난리를 겪는다. 이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화장실 변기에서 오물이 역류하는 장면이다. 연극에서 비를 대신하는 것은 지진이다. 지진으로 빈곤층이 살던 저지대는 집이 부서지거나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지만 고지대 주택들은 아예 피해를 보지 않는다. 정의신은 공연 프로그램을 통해 1995년 간사이 지역을 강타한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고베의 사례를 참조했다고 밝혔다. 극중에서 지진 발생 이후 나가이 가족이 생일 파티를 여는 것이 다소 위화감이 든다. 하지만,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고지대의 부유층이 개를 끌고 저지대로 산책을 다녀온 것이 보도됐다는 점에서 빈곤층의 어려움을 공감못하는 부유층의 모습을 드러내기에 무리가 없다는 게 정의신의 설명이다.

이외에 연극에선 가정부 다마코 부부 외에 그 아들을 등장시킨 것이 영화와 다른 점이다. 지하실에 1명이 아니라 2명이 숨어 사는 설정이다. 영화에선 문광(이정은)의 남편 근세(박명훈)가 사채까지 끌어다 쓴 사업이 실패해 지하에 들어왔다면, 연극에선 남편이 늙고 병들어 누워있는 상태에서 아들이 사채 때문에 숨어들어와 있다. 빈곤층의 경우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연극 초반 제방 아래 함석집 마을 사람들이 사채 때문에 폭력배들에게 맞거나 끌려가는 모습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일본에서 공연중인 연극 ‘기생충’의 프로듀서 이봉우(왼쪽)와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스모모·분카무라

연극 ‘기생충’은 재일교포 영화 제작자인 이봉우 스모모 대표의 기획에서 비롯됐다. 이 대표는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 ‘박치기’(2005) ‘훌라걸즈’ 등을 제작해 일본 아카데미상을 수 차례 받은 바 있다. 특히 한국 영화가 일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1994년 ‘서편제’를 시작으로 ‘쉬리’ ‘오아시스’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등을 수입해 일본에 소개했다. 이봉우 대표는 7일 본보와 만나 “2019년 영화 ‘기생충’의 일본 시사회에서 봉 감독이 원래 연극으로 구상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무대화를 추진했다. 그동안 내가 제작한 영화가 무대화된 적은 몇 차례 있지만 직접 연극 제작에 나선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면서 “연극 ‘기생충’을 맡을 사람으로는 그동안 수많은 연극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정의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봉 감독 역시 공연 프로그램을 통해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을 보고 기립박수를 보낸 기억을 떠올리며 정의신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대표는 2020년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직후 봉 감독과 만나 연극화를 타진했다. 그리고 공연권을 가진 CJ ENM과도 바로 계약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영향으로 실제 무대에 오르기까지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대신 일본보다 앞서 중국에서 지난해 1월 양팅이 연출한 연극 ‘기생충’이 먼저 선보여진 후 지금까지 베이징, 상하이 등 10개 넘는 도시에서 투어공연을 펼쳤다. 이봉우 대표는 “팬데믹의 영향으로 연극 제작이 미뤄지긴 했지만, 그 기간 대본을 좀 더 다듬는가 하면 좋은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공연 중인 연극 ‘기생충’의 한 장면. 분카무라

전 지구적인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다룬 봉 감독의 동명 영화를 무대화했지만 일본적 색채가 강한 연극 ‘기생충’은 스모모, 씨어터 코쿤 등을 운영하는 분카무라, 정의신이 속한 레프로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했다. 7월 2일까지 도쿄 씨어터 밀라노자에서 공연한 후 7월 7~17일 오사카 신가부키자 극장 무대에 오른다.

도쿄=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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