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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신 “연극 ‘기생충’, 원작 영화 주제 따르지만 일본적”

봉준호 감독의 동명 영화 무대화…5일 도쿄에서 개막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고베 배경으로 빈부격차 다뤄


“영화 ‘기생충’이 워낙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에 원작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일본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로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습니다.”

지난 5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씨어터 밀라노자(900석)에서 봉준호 감독의 동명 영화를 토대로 만든 연극 ‘기생충’이 개막했다. 7월 2일까지 도쿄 씨어터 밀라노자에서 공연한 후 7월 7~17일 오사카 신가부키자 극장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을 만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재일교포 출신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65)은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봉준호 감독이 (영화의 무대화와 관련해) ‘자유롭게 하세요’라고 했지만, 원작 영화가 워낙 훌륭해서 세 가족을 통해 빈부 격차 문제를 다루는 본줄거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었다”면서 “다만 영화가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과 달리 연극 무대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무대 장치를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밝혔다.

정의신은 일본의 연극과 영화 분야에서 굵직한 획을 그은 극작가·시나리오 작가 겸 연출가다. 1957년 간사이 지역의 효고현 히메지에서 태어난 그는 영화 데뷔작인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로 1993년 키네마준보 각본상, 연극 ‘더 테라야마’로 1994년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을 받는 등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한국에서는 2008년 일본 신국립극장과 한국 예술의전당의 합작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이 대단한 호평을 받은 이후 거의 매년 2편 이상의 작품이 공연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연극 ‘기생충’의 공연 프로그램에는 봉 감독도 그가 쓰고 연출한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을 보고 기립박수를 보냈던 것을 밝히고 있다.

일본에서 공연 중인 연극 ‘기생충’의 장면들. 연극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동명 영화를 무대화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일본 간사이 지방으로 시·공간적 배경이 바뀐 것이 특징이다. 분카무라 제공

정의신이 연극 ‘기생충’을 공연하게 된 것은 재일교포 영화 제작자인 이봉우 스모모 대표의 기획에서 비롯됐다. 이 대표는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박치기’ ‘훌라걸즈’ 등을 제작했으며, ‘서편제’ 쉬리’ ‘오아시스’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등을 일본에 수입했다. 정의신은 “‘살인의 추억’ 등 봉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서 이 대표의 ‘기생충’ 무대화 제안을 바로 수락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작업에 바로 후회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연극 ‘기생충’은 동명 영화를 무대화했지만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발생한 고베로 배경이 바뀌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한국의 반지하 주택이 없기 때문에 영화 속 기택(송강호)에 해당하는 가네다 분페이의 가족은 제방 아래 함석집 마을에 사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가네다 가족이 사는 함석집은 제방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지상이지만 지하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영화 속 박사장(이선균)에 해당하는 나가이 신타로의 가족은 고지대의 호화 저택에서 산다.

“‘기생충’을 일본에 대체할 경우 어디가 가장 적합한 장소인지 생각했을 때 고베의 거리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고베는 산에 가까운 곳은 부유층의 거리이고 바다 쪽은 노동자의 거리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생충의 주제인 빈부격차를 서울에서 고베로 대체함으로써 일본 관객들에게 매우 사실적이고 친근한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의신은 2008년 일본 신국립극장과 한국 예술의전당의 합작해 초연한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위)의 극작과 연출을 맡았다. 당시 한일 양국에서 호평을 받으며 여러 차례 재연됐다. 2018년 정의신 감독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아래)로도 만들어졌다. 신국립극장 제공

정의신은 연극 ‘기생충’에서 몇몇 장면을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제방 아래 함석집 마을 사람들이 사채 때문에 폭력배들에게 맞는 모습이나 가정부가 지하실에 남편만이 아니라 아들까지 숨겨둔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기생충’은 부잣집 가족, 그 부자에게 빌붙으려는 가족 그리고 부잣집 지하에 사는 가족까지 세 가족의 이야기다”면서 “세 가족은 어쩌면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사소한 엇갈림으로 비극을 낳고 만다. 그것을 클로즈업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의신의 경우 ‘야끼니꾸 드래곤’ 등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서 ‘경계인’으로 살아온 ‘자이니치’(在日·재일 한국인)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작업을 ‘기록하는 연극’이라고 칭한 바 있는데, 연극 ‘기생충’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연극 ‘기생충’의 중심이 되는 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도 30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혔다. 지진 재해로 입은 상처를 연극으로 ‘기록’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정의신의 연극 ‘기생충’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을까. 만약 한국 무대에 오른다면 그는 일본어 프로덕션과 한국어 프로덕션 가운데 어느 쪽으로 만들어지길 바랄까. 그는 “이번 연극 ‘기생충’은 일본인 관객을 의식해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상연된다면 한국인 배우, 한국인 스태프와 힘을 합쳐 ‘한국판 기생충’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대본부터 손을 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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