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용’ 내건 新서울지하철 노선도…시각약자는?

서울시가 지난 13일 공개한 '서울 지하철 노선도'와 색각 시뮬레이터(전색약)를 통해 변환한 노선도를 차례로 재생한 영상.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선도를 재편집한 영상으로, 색각 이상자가 보는 실제 색상은 위 영상과 다를 수 있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가 40년 만에 대폭 수정한 ‘지하철 노선안 디자인 초안’을 두고 색각이상자 등 시각 약자들이 이용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시는 지난 13일 디자인 공개 당시 “색약자, 시각 약자, 고령인들도 보기 쉽도록 약자를 배려해 노선의 색상과 패턴을 새롭게 적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물론 해당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디자인이 시각 약자들의 접근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색약자들 “특정 노선, 환승역 구분 힘들어”

‘적록색약’을 가진 A씨는 2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지하철 노선도에 대해 “1호선과 5호선은 구분하기 힘들고, 3호선과 7호선도 거의 똑같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종로3가, 을지로3가와 같이 노선이 교차하는 곳은 호선이 헷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색약’은 특정한 색을 식별하는 능력이 부족한 질환으로, 보건복지부는 국내 남성의 약 5.9%, 여성의 약 0.4%가 색각이상(색맹·색약)이라고 집계하고 있다. A씨는 녹색과 적색 계열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적록색약이다.

A씨는 “색각 이상은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데다 이를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서, 비색각 이상자들은 이 문제를 인지하기 어렵다”면서 “공공 디자인에서라도 색각 이상자들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좀 더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 13일 공개한 '지하철 노선도 디자인(왼쪽)'과 색각 시뮬레이터(전색약)를 통해 변환한 지하철 노선도 디자인(오른쪽)을 비교한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재편집한 이미지로, 색각 이상자가 보는 실제 색상은 위 이미지와 다를 수 있다. 서울시 제공

‘적록 색약’이 심해 색맹에 가깝다는 진단을 받은 아마추어 사진작가 B씨(60)는 “2호선과 3호선, 7호선이 약간 진하다 차이만 보일 뿐 구분이 되질 않는다”면서 “계양에서 인천으로 가는 인천 1호선 라인은 너무 흐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B씨에게는 녹색과 적색이 고동색과 흡사하게 보인다고 한다. 그는 “색약이 있는 해외 관광객이나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노선도를 보고 헷갈릴 수 있다”면서 “색각 이상자들의 의견을 청취해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시각 디자이너들 “색상뿐만 아니라 명도 대비도 충분치 않아”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시각 디자이너들도 노선도를 표시한 색상의 명도 대비가 낮아서 색각 이상자뿐 아니라 저시력자와 고령자 등도 노선을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 콘텐츠의 명도 대비가 작을수록 저시력자와 고령자가 내용을 인식하기 어렵다.

실제 국민일보가 전체 23개 노선도의 명도 대비값(RGB 기준)을 측정한 결과, 전체 노선의 평균 명도 대비값은 4.198에 그쳤다. 한국형 웹콘텐츠 접근성 지침 2.1에 따르면 텍스트 콘텐츠의 권장 명도 대비값은 4.5 이상이다.

특히 8개 노선의 명도 대비값은 최소 기준치(3.0)보다도 낮았다. 가장 낮은 건 인천 1호선(1.6)이었고 이어 우이신설선(1.81), 인천2호선(1.89), 수인분당선(2.02), 경의·중앙선(2.11), 서해선(2.42), 의정부경전철(2.45), 9호선(2.68) 등 순이었다.

서울 지하철역 내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지하철 노선도는 “성별, 나이, 국적 또는 장애의 유무 등과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계획한다”는 취지로 서울시가 추진하는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대상이다. 새 지하철 노선도는 지하철 역사와 같은 공공장소는 물론 모바일 기기, PC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서울시는 지난 7월 24일부터 ‘유니버설디자인 도시조성 기본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하철 노선도는 조례상 유니버설 디자인을 인증하는 공공디자인진흥위원회의 심의 대상에서는 빠져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2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초안 발표 전에) 전문가가 참여해 색약 관련 기계 테스트를 거쳤다. 12월 최종안 발표 전에 색각 이상자 등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계획하고 있다”며 “최종 발표 전에 의견 수렴과 내부 검토를 거쳐 여러 지적 사항을 수정·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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