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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씀이 줄여 버틴 9년…1분 남짓 연기에 모든 걸 쏟았다

우슈 서희주, 항저우AG 여자 투로 최종 4위…3위와 0.003점 차이
실업팀조차 없는 여자 우슈…부상 이겨내고 9년 만의 AG 도전 마쳐

서희주가 27일 중국 항저우 샤오산 구아리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우슈 여자 투로 창술 전능 결선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27일 항저우아시안게임 우슈 여자 투로 경기가 펼쳐진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구아리 체육관. 검술에 이어 메달색이 결정되는 창술 경기가 시작되자 경기장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출전선수 11명 중 가장 마지막 순서로 나선 서희주(29·전남우슈협회)는 혼신의 힘을 다해 창을 휘둘렀다.

이번엔 부상도 실수도 없었다. 우슈의 예술성의 표현하는 이 종목에서 서희주는 지난 9년간 준비했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검술과 창술 점수를 더한 총점은 19.423점, 최종 4위에 이름을 올렸다. 3위인 베트남의 두옹 뚜이 비(19.426점)보다 단 0.003점이 모자라 메달을 놓쳤다.

서희주가 27일 중국 항저우 샤오산 구아리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우슈 여자 투로 창술 전능 결선 경기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경기 직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서희주는 잠시 울컥했지만 “원래 눈물 없기로 유명하다. 아시안게임 때마다 우는 것만 나온다”며 가까스로 눈물을 참아냈다. 이어 “5년 전에 아예 출전도 못한 게 한이 돼서 그렇다”며 “4위라는 성적은 너무 아쉽지만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2014년 인천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그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경기 직전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기권해야만 했다. 당시 눈물을 펑펑 쏟아냈던 서희주는 은퇴를 미루고 다시 아시안게임에 도전했다. 1분30초 동안 펼쳐지는 아시안게임 우슈 경기에 다시 나서기까지 9년이 걸렸다. 서희주는 “스트레칭 시간도 늘리고 자나 깨나 부상만 조심했다”고 말했다.

서희주가 27일 중국 항저우 샤오산 구아리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우슈 여자 투로 창술 전능 결선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서희주가 27일 중국 항저우 샤오산 구아리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우슈 여자 투로 창술 전능 결선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인고의 세월이었다. 여자 우슈는 남자부와 달리 국내에 실업팀이 없다. 운동에 필요한 모든 걸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하루 8만원의 국가대표 훈련수당, 각종 대회 입상을 통해 쌓은 월 75만원의 메달 연금이 그의 수입 전부였다. 어릴 땐 단기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얼굴이 알려진 이후로는 그 또한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 훈련만 했다고 한다.

서희주는 “그냥 하루 벌어서 하루 쓰는 셈이다. 사고 싶은 걸 좀 참기도 하고 훈련에만 몰입했던 것 같다”며 “좀 빠듯하긴 해도 연금은 나중을 위해 안 쓰고 꼭꼭 모은다”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우슈를 내려놓긴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그만 두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날 때면 마음이 아팠다. 그는 “돈도 못 벌고 다치고 ‘이걸 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나중엔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도 못할 거라는 생각에 계속 도전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서희주의 일기. 서희주 제공

서희주는 우슈 체육관장이었던 아버지의 권유로 일곱 살때부터 우슈를 배웠다. 혹독한 지도 속에 한 단계씩 성장했고, 곧 우슈의 매력에 빠졌다. 어린 시절부터 유명한 우슈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우슈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꿈도 품었다.

서희주는 “2014년 인천 대회 때 현실로 이뤄졌다. 저를 응원해주고 우슈를 좋아해주는 분들이 많아지니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선수로는 마지막 아시안게임을 마쳤다. 그는 “후련할 줄 알았는데 사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다음 아시안게임 출전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 선수로 남아있는 게 신기하다. 이 나이에 성적을 낸 제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칭찬을 해주고 싶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서희주가 27일 중국 항저우 샤오산 구아리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우슈 여자 투로 창술 전능 결선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서희주는 이날 밤늦도록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다. 우슈 산타 종목에 출전한 대표팀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곁에서 힘이 되어줬던 동료들에게 진 빚을 열띤 응원으로 갚아주고 있었다.

항저우=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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