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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팀이었던 남북 농구, 이젠 코트서도 모른 체…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81대62로 승리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항저우=이한형 기자

한때는 남북 단일팀을 이뤘지만 이제는 완전한 적이 됐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항저우아시안게임 조별리그에서 북한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 남북 단일팀으로 뭉쳐 뛰었던 북한 선수들은 코트 안팎에서 한국 선수들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정선민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여자농구 조별리그 C조 2차전에서 북한을 81대 62로 꺾었다. 남북은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단일팀을 이뤄 은메달을 땄지만 5년 만에 적으로 만나 조별리그에서 경쟁을 펼쳤다.

북한 선수 중에는 5년 전 단일팀에서 뛰었던 노숙영과 김혜연이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 이들을 포함한 북한 선수들은 경기장이나 선수촌은 물론 코트 위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눈을 피했다고 한다. 한국 선수들이 우연히 마주쳐서 이름을 불러도 북한 선수들은 못 들은 척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도 굳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긴 어려웠다.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81대62로 승리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항저우=이한형 기자

남북 단일팀 멤버였던 한국의 주포 강이슬은 “(북한 선수들이)넘어지면 외면하지 말고 서로 일으켜 주자고 경기 전에 선수들끼리 얘기했었는데, 사실 그런 상황이 없었다”며 “단일팀으로 같이 뛴 북한 선수들도 오늘 경기에 몇 명이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눈을 안 마주치고 경기 후 하이파이브도 하지 않았다. 속상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이슬은 “추석에 북한과 경기를 하니 이겨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전했다.

남북 단일팀에 고교생 신분으로 참가했던 박지현은 “적으로 상대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색다른 부분도 있었다. 경기 전에 설레는 부분도 있었지만 추석인 만큼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단일팀 센터였던 박지수는 “5년 만에 만나 반가울 줄 알았는데 따로 인사는 못했다. 코트에선 상대이기 때문에 농구에만 집중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약 100명 규모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인공기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한국 선수들이 자유투를 던질 때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민족 대명절 추석인 29일 오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여자농구 조별리그 C조 경기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북한 선수단이 응원을 펼치고 있다. 항저우=이한형 기자

경기가 끝난 뒤 남북 선수들은 악수를 나누지 않았다. 북한 선수들은 경기 직후 한국 대표팀에 인사를 하지 않고 코트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와 인사만 하고는 자리를 떴다. 경기 직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도 북한 선수들은 아무 말 없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한국의 정선민 감독과 북한의 정성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만 코트 위에서 악수를 주고받았다.

정선민 감독은 경기 전 북한과 격한 몸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수들에게 주의를 줬다고 했다. 정 감독은 “제 경험에도 북한 선수들이 코트에서 터프하게 하는 스타일이어서 몸싸움이 생길 수 있다고 선수들에게 얘기했다”며 “매너있게 잘 헤쳐 나가자고 당부했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29점 17리바운드로 활약한 북한 센터 박진아에 대해 “(같은 팀에)있었으면 만리장성(중국)도 넘었을 텐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북한 여자농구 대표팀의 정성심 감독(오른쪽)과 북한 선수 강향미가 29일 항저우아시안게임 남북 맞대결을 마친 뒤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항저우=박구인 기자

경색된 남북 관계를 증명하듯 정성심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단답형으로만 답했다. 한국과의 경기에 부담이 없었는지 묻자 “긴장된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다. 국제경기에 처음 참가하는 선수가 많아 실수가 많아서 경기가 약간 잘 안됐다”고 잘라 말했다. 박진아에 대해선 “아시아적으로 큰 키를 가진 선수인데 국제대회에서 처음 경기를 치렀다. 전혀 신심을 잃지 않는다”며 “앞으로 더 훌륭한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더 많은 훈련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이라는 표현이 언급되자 함께 배석한 북한 관계자가 언짢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영어로 “우리는 노스 코리아(North Korea)가 아니라 DPR 코리아(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다. 아시안게임에선 모든 나라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야 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5년 전처럼 향후 단일팀을 구성하기를 원하는가. 시기는 언제쯤으로 보는가’라는 한 외신 기자의 질문에도 “이번 경기와 관련이 없다고 봅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항저우=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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