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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커 ‘녹음기 인터뷰’도 꺼버린 AG 金

한국이 29일(한국시간) 중국 항저우 e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 결승전에서 대만에 2대 0으로 꺾고 금메달을 땄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는 ‘페이커’ 이상혁(왼쪽)과 ‘쵸비’ 정지훈. 공동 취재단

한국 ‘리그 오브 레전드’ 대표팀 선수들은 1달 동안 서로 많은 것을 터놓은 듯했다.

한국은 29일(한국시간) 중국 항저우 e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 결승전에서 대만에 2대 0으로 이겼다. 지난 한 달간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합숙 훈련을 한 노력을 금메달로 보상받은 셈이다.

대표팀은 메달 세리머니가 끝나고 선수촌으로 복귀 하기 전 취재진과 인터뷰에 응했다. 김정균 감독과 이재민·김동하 전력분석관, 이날 경기에 나섰던 5명의 선수가 취재진과 마주 앉았다. 무작위 도핑 테스트 대상에 포함된 ‘페이커’ 이상혁만이 타의로 불참했다.

인터뷰 도중 자리에 없는 이상혁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박재혁은 “상혁이 형은 기계적이고 FM인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는 장난도 많이 치고, 말도 걸어주고 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정지훈 역시 “팀원들과 있을 때는 밝고, 잘 대해주고, 좋은 사람이다. 밖에서는 프로페셔널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진혁은 “내게 상혁이 형은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였다. 실제로는 이와 달리 사람이 정말 좋다”면서 “기계적이지 않고 인간적이다. 농담이 가끔 재밌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촌에서 와서 상혁이 형의 인기가 ‘미쳤다’고 느꼈다. 아시안게임 원탑이지 않을까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인터뷰가 30분가량 진행됐을 때 이상혁이 도핑 테스트를 마치고 합류했다. 평소 기자실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녹음기 답변’ ‘정석 답변’만을 내놓던 그인데, 이날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기쁨 때문인지 무표정의 ‘페이커’가 아닌 웃음기 많은 ‘이상혁’이 보였다.
한국이 29일(한국시간) 중국 항저우 e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 결승전에서 대만에 2대 0으로 꺾고 금메달을 땄다. 기뻐하는 ‘케리아’ 류민석과 ‘룰러’ 박재혁. 공동 취재단

반대로 이번엔 그에게 서진혁, 정지훈, 박재혁처럼 한 팀 생활을 해보지 않았던 선수들과의 여정이 어땠는지를 묻는 얘기가 나왔다. 그는 “다들 잘하는 선수다 보니 같은 팀이 돼서 굉장히 든든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으로서 점점 성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답했다.

여기까지는 이상혁 특유의 녹음기 답변이었는데, 이후부터 평소와 다른 어조와 답변이 나왔다. 그는 “정지훈은 솔로 랭크하는 모습을 옆에서 계속 지켜보는데 솔로 랭크 1등까지 찍더라.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반면 서진혁은 올라가지 못하고 마스터 티어에 머물렀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재혁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박재혁도 저와 솔로 랭크 1000점 먼저 찍기를 내기했는데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박재혁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니까 재밌더라”라고 덧붙였다.

이상혁의 발언에 박재혁은 바로 발끈했다. 그가 “상혁이 형과 솔로 랭크 1000점 내기를 했는데…”까지 운을 떼자 이상혁이 바로 말을 끊고 “처음에는 또 제가 (점수가) 낮았기 때문에”라며 박재혁을 다시 궁지로 몰아세웠다. 이에 “아니다. 정확히 하자면 제 점수가 더 낮았다”라며 항변하려던 박재혁은 이내 체념한 듯 “상혁이 형이 팀운이 좋았다”며 고개 숙였다.

짧게는 1달, 길게는 5년간 쌓여온 긴장이 비로소 해소되어서일까. 인터뷰는 전에 없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지난 1달 동안 선수들은 e스포츠 선수로서 서로의 게임 플레이 방식을 배우고 흡수해나가면서 성장했다. 동시에 또래 친구로서는 친분을 쌓았다. 서진혁은 “오늘까진 고생했고, ‘LoL 월드 챔피언십(월즈)’은 다른 대회니까 다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케리아’ 류민석은 “최선을 다해서 다른 팀 선수들은 (집에) 보내겠다”고 응수했다.

귀국하면 다시 야인으로 돌아가는 김정균 감독이 나지막이 “나는 캔맥주를 마시면서 선수들의 경기를 보겠다”고 말했다. 박재혁이 “감독님은 징동 게이밍과 T1의 경기를 직관하러 오겠다고 하셨다”면서 “젠지 경기를 보러온다는 말씀은 안 하셨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때 섭섭한 표정의 정지훈을 모른 체하는 김 감독의 눈동자는 결승전 1세트 밴픽 순간보다 더 과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항저우=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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