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흑인 그리스도인 그리고 여기 우리

[서평] 진리는 나의 집에 있었다/이서 매컬리 지음/백지윤 옮김/IVP
이재근(광신대 신학과 교회사 교수)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사진=국민일보DB

미국, 흑인, 기독교, 미국 흑인 기독교
미국 학계와 문화계, 언론계, 정치계, 스포츠계에서, ‘흑인,’ 즉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s)과 그들의 문화, 정체성은 그 논의의 역사가 아주 길다. 그러나 여전히 쉽게 해결되지도, 결론이 나지도 않는 뜨거운 감자와도 같다. 미국 역사에서 흑인은 다른 인종이나 민족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역사적 경험 위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유럽 백인과 아시아인이 더 나은 생활 조건을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민을 떠나 정착함으로써 미국민의 일원이 된 것과 달리, 흑인 대부분은 강제 노역을 위해 끌려온 노예이자 그들의 후손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정신과 육체에 새기고 있는 이들이다.

미국에서 노예제가 법적으로 폐지된 1863년 이후에도 흑인은 미국 전역, 특히 남부에서 법적 육체적 제도적 정서적 언어적 차별에 시달렸다. 2013년에 시작되어 여전히 진행 중인 인종차별 반대 운동(Black Lives Matter, BLM)에서 알 수 있듯, 노예 해방 이후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차별이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압제와 차별이 유발한 슬픔 분노 좌절 낙망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여러 시도 속에서 생겨난 희망과 기대가 모두 미국 흑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여전히 형성 과정에 있는 이 정체성은 문학 음악 미술 스포츠 정치 등의 장르를 통해 다양하게 모색되고 구현되는데, 신학과 기타 학문이 미국 흑인 정체성 발견과 형성에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이런 이유로 미국 기독교 학계와 출판계에는 흑인 교회 및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특징을 탐구한 여러 학문 분야의 문헌이 풍성하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 출판계에서 흑인 그리스도인의 신앙 및 신학을 다룬 문헌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런 점에서 금번에 한국 독자에게 선보이는 이서 매컬리(Esau McCaulley)의 ‘진리는 나의 집에 있었다: 흑인 그리스도인의 삶과 성경 해석, 소망 연습’(Reading While Black: African American Biblical Interpretation as an Exercise in Hope, IVP Academic, 2020)는 한국 IVP가 한국 기독교 출판계와 학계의 울타리를 넓히고자 시도한 도전이다. 본서는 출간 이듬해인 2021년에 미국 복음주의 잡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가 선정한 올해의 책(The Orthodoxy Book of the Year)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남부 흑인 기독교 환경에서 자라 온 저자, 이서 매컬리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와 1960년대 말 흑인 신학의 창시자 제임스 콘(James H. Conn, 1938~2018)의 저작 이후로, 이서 매컬리의 ‘진리는 나의 집에 있었다’는 아마도 한국 학계와 교계에 소개되는 첫 흑인 기독교 문헌 중 하나일 것이다. ‘진리는 나의 집에 있었다’는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대학인 휘튼 칼리지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는 학자 이서 매컬리가 학술서로 기획 저술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1장과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보너스 트랙, 그리고 각 장 중간에 등장하는 개인적 이야기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자전적 회고록의 특징도 지닌다. 저자 스스로가 책에서 밝힌 내용에다, 개인 홈페이지와 여러 언론 인터뷰 등을 종합하면 매컬리가 본서를 쓰게 된 동기, 목적, 주장 등을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서 매컬리는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의 최대 도시 헌츠빌에서 믿음이 깊은 어머니가 양육한 네 자녀 중 하나로 자랐다. 많은 미국 도시들이 그렇듯, 그와 형제들도 흑인 거주 구역에서 자라며, 흑인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흑인 신도로 구성된 침례교회에 출석했다. 집안에는 어린 시절부터 흑인 영가로 대표되는 복음성가가 늘 울려 퍼지고, 킹제임스성경이 늘 거실 선반에 놓여 있었다. 그와 형제들도 매주 주일 예배는 물론, 주중 성경공부와 거의 모든 여름 성경학교에 참석했고, 성경 만화와 킹제임스성경을 성실하게 읽었다. 그러나 미국 남부의 복음적인 흑인 가정에 복음성가와 킹제임스성경만 있지는 않았다. 음악 재능이 탁월했던 이전 시대의 흑인들이 재즈나 블루스로 미국 음악을 주도했듯, 이서 매컬리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힙합이 대세였다. 그 역시 복음성가 못지않게 힙합을 통해 흑인 고유의 영성과 음악성, 정서, 의식을 함양했다.

흑인 그리스도인과 성경은 어떻게 만나는가
이렇게 정통적이면서 동시에 특수문화적인 남부 흑인 기독교 환경에서 자라 온 그는 1998년에 대학에 진학하며 신세계에 진입했다. 본서에서는 단순히 ‘대학’으로 언급되지만, 그가 다닌 대학은 ‘스와니’(Sewanee)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남부 대학교(The University of the South)였다. 이 대학은 미국성공회(Episcopal Church in the United States)가 운영하는 대학으로, 대학 안에 교단 공식 신학교도 있었다. 미국성공회는 미국 내에서 신학이 가장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교단이었으므로, 역사와 종교를 전공한 매컬리에게는 학교에서의 모든 배움이 기존 지식과 신앙을 뒤흔들어 놓는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미국 흑인 그리스도인 대다수가 침례교, 감리교, 오순절 전통의 교단에 속해 있으므로, 성공회가 운영하는 이 학교에는 흑인이 거의 없었다. 여기서 매컬리는 처음으로 ‘주류 기독교’(mainline Christianity)라 불리는 전통, 즉 백인 진보 기독교를 맛보았다. 이들 백인 주류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성경을 믿는 미국 백인 그리스도인들이 보수 신학을 기반으로 노예제와 인종차별을 정당화했던 역사를 반성했기에, 흑인 학생인 매컬리를 평등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매컬리는 이를 감사히 여겼다. 그러나 이 주류 기독교 전통에 불편함도 느꼈다. 흑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불의가 성경에 대한 근본주의적 문자주의 해석에서 유래했다고 믿었기에, 이 주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해방된 백성의 자부심과 구원의 희망을 발견한 매컬리를 비롯한 많은 흑인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을 그렇게 재구성하려는 백인 주류 그리스도인의 시도는 흑인에게서 성경을 빼앗아 가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는 이 ‘제1의 입장’이 흑인 그리스도인이 갈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역사학 학위를 취득한 2002년에 매컬리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미국 복음주의 대표 신학교 중 하나인 고든 콘웰 신학교에 진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체화된 복음주의 신앙에 대한 애정으로 고든 콘웰에 진학했지만, 고든 콘웰도 그에게 편안한 옷은 아니었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복음주의의 신뢰는 공유했지만, 흑인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는 소외감을 느꼈다. 그가 읽은 책의 저자는 모두 백인이었고, 흑인이 거의 없던 이 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은 흑인 교회와 흑인 그리스도인에 대해 무식하고 투박하고 감정적인 집단이라는 고착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흑인 그리스도인의 역사적 경험과 그들의 성경 읽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매컬리는 데이비드 베빙턴이 규정한 복음주의 네 기둥, 즉 성경주의, 십자가 중심주의, 회심주의, 행동주의만으로는 흑인 복음주의자들의 경험을 온전히 반영할 수 없다고 느꼈다. 불의에 대한 일상적인 무관심, 인종차별과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침묵이 사실상 미국 백인 복음주의에 추가되어야 할 두 기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매컬리는 ‘제2의 입장’ 즉 미국 백인 복음주의의 길도 흑인 그리스도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고든 콘웰을 졸업한 후 매컬리는 위스콘신에 위치한 내쇼타 하우스(Nashota House)에서 신학석사(STM) 과정을 밟았다. 이 학교는 미국성공회와 캐나다성공회의 신학적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성공회 신자들이 2009년에 결성한 북미성공회(Anglican Church in North America)가 운영하는 신학교였다. 매컬리는 이 교단에서 사제로 안수를 받는데, 아마도 대학 시절에 처음 익힌 성공회 신앙과 고든 콘웰에서 경험한 복음주의 전통이 만나는 접점이 이 신학교와 교단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어서 그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학으로 건너가, 유명한 톰 라이트의 지도로 2017년에 신약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2019년부터 휘튼 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서 매컬리가 찾은 ‘제4의 길’
이런 일련의 학위 및 목회자 훈련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는 흑인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는 탐구를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차별당하는 흑인의 상황을 신학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을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급진적 흑인 신학자들의 글도 연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 공감하는 지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컬리는 공허함도 느꼈다. 이들은 성경을 세상의 난제를 해결하는 책으로 보지 않고, 성경 자체를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제3의 입장’, 실제 흑인 교회의 믿음과 경험을 반영하지 못하고 이론만 무성한 이런 흑인 진보 신학도 일반 흑인 그리스도인이 추구할 모델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결국 “성경은 미국 흑인의 존재와 공간을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서 매컬리는 ‘제4의 입장’을 제안한다. 그는 이 입장을 새롭게 창설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예 시절부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권위를 굳건하게 인정한 흑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읽고 설교하고 적용한 그 유산 안에 정경적이고, 신학적이며, 동시에 상황적인 성경 읽기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사회문화적 의제에만 집중하며 성경 본문을 버리거나, 반대로 성경 본문에만 치우치다가 문화적 현실을 배제하는 성경 읽기 대신, 복음과 상황 양자를 모두 붙잡은 성경 읽기가 흑인 교회 성경 읽기의 유산이자 전통이라는 사실을 역사적 해석학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저자가 본서를 쓴 의도이자 목적이다. 2장부터 저자는 미국 흑인의 역사와 현재를 반영하는 주요 주제, 즉 경찰 정치 정의 자부심 분노 자유 소망을 성경 신학의 논의와 엮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본서는 ‘거기와 여기,’ ‘그때와 지금’에 모두 충실한 해석과 적용이라는 성경해석학의 핵심 원리를 흑인 기독교 성경 읽기 전통에 성공적으로 실험한 사례 연구로 평가받을 만하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성경 읽기
그러면 한 미국 흑인 그리스도인 학자가 깊은 고민과 탐구를 통해 이런 ‘제4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을 읽는 것이 한국 그리스도인 독자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일까. 우선은 읽는 재미와 흥미다. 미국에서 이민자나 유학생으로 장기간 거주하지 않는 한, 한국 그리스도인 대다수는 미국 흑인과의 접점의 거의 없다.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상관없이, 장르를 불문하고, 우리가 읽는 기독교 서적 대부분은 백인 그리스도인의 작품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기독교 관련 집회에서 우리가 만나는 미국인도 대부분 백인이다. 따라서 거의 처음으로 접하는 미국 흑인 그리스도인의 성경 읽기 사례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는 이 책의 더 분명한 가치가 있다. 우리의 성경 읽기 방식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인 대다수는 사실상 매컬리가 해설한 네 가지 길 중, ‘두 번째 길’을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진보적인 신학교 교수나 학자, 운동가 일부가 미국 백인 주류 기독교의 ‘제1의 길,’ 혹은 흑인 급진 신학자들의 ‘제3의 길’을 추구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를 신뢰하는 한국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영어권 백인 보수 복음주의자가 규정한 믿음과 행위의 틀 그 자체를 정통의 기준으로 의심 없이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흑인 그리스도인 매컬리는 자기 민족에 대한 압제와 불의를 정당화하거나 침묵하는 이 두 번째 길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류 보편의 신앙의 토대인 성경은 그의 흑인 조상들의 고유한 역사적 경험이라는 대장간에서 제련되어 그들의 손에 다시 들려졌다.

신앙의 보편성과 고유성은 역사 속의 모든 그리스도인 집단이 소유한 유산이다. 한국인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다. 굳이 자신학화, 토착화, 한국화 같은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서양인이 전수한 신앙을 그대로 복제하는 수준을 넘어서, 성경적이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우리의 신앙 유산을 정의하고 정립하려는 노력은 늘 필요하다.

이재근 교수. 사진=국민일보DB

이재근: 광신대 신학과 교회사 교수.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 ‘20세기, 세계, 기독교’(이상 복있는사람) ‘종교개혁과 정치’(SFC) ‘교회사 용어 사전’(공저, IVP) 등을 썼고, ‘칼뱅’(IVP) ‘복음주의 확장’ ‘복음주의 세계확산’ ‘종교개혁은 끝났는가’(이상 CLC) 등을 번역했다.

정리=mainport@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문서선교 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