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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다’…英명문대들, 교수진 해고하고 학생수 줄이고

영국 옥스퍼드대 클래런던 빌딩. 게티이미지뱅크

영국 명문 대학들이 재정난에 빠졌다. 인플레이션 위기에도 등록금이 10년 넘게 동결된 탓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비를 삭감하고 온라인 강의를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학계에서는 교육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6일 “약 30개의 영국 대학이 가장 최근 학년도에 재정적 손실을 보고했으며 올해 그 수가 세 배 더 늘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24개 명문대학으로 구성된 러셀 그룹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이 대학들은 2022~2023학년도에 학생 1인당 2500파운드에 가까운 적자를 봤다. 이 수치는 2030년 5000파운드로 두 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재정적 위기는 정부가 대학 등록금을 동결하면서 초래됐다. 영국의 대다수 대학은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립대학이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등록금을 결정하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2012년 이후 영국 국내 학생 대상 등록금은 2017년에 연간 9000파운드에서 9250파운드(1만1200달러에서 1만1500달러)로 한 차례, 약 2.8% 인상됐다. 고등 교육 컨설팅 회사인 ‘데이터HE’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계산했을 시 2012년 이후 등록금은 약 3분의 1 가량 하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물가 상승을 그대로 반영했다면 1만4000파운드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같은 기간 미국 사립 대학의 등록금은 명목상으로는 40%, 인플레이션 이후에는 10% 가까이 상승해 평균 3만4041달러에 달했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유권자의 표심’이 달라질 수 있는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에 등록금 인상에 적극 나서는 정치인이 없는 상황이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로버트 하펀 고등교육부 장관은 최근 “지난 2년간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영국 평균 급여가 하락했다. 등록금 인상은 백만년 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WSJ는 “지난해 물가가 평균 8% 급등하고 올해 7% 정도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학들의 적자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옥스퍼드대 아이린 트레이시 신임 부총장은 지난 3월 열린 고등 교육 세미나에서 “처음 3개월 동안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사실은 고등 교육 부문이 재정적으로 매우 위험하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학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자체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잉글랜드에 있는 이스트앵글리아대는 연간 3000만 파운드의 예산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행정직, 교수진을 해고하고 교육과 연구 분야를 축소했다.

요크대는 팬데믹 이후에도 온라인 수업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이 대학 생물학과에 입학한 이자벨 코리(19)는 첫 학기에 6개의 과목 중 5개를 온라인으로 수강했다. 학생들은 대체로 녹화 강의를 시청했고, 교수와 대면하는 일은 극히 적었다고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와 소설가 이언 매큐언 등을 배출한 이스트앵글리아대의 데이비드 매과이어 부총장은 대학들의 이런 조처에 대해 “궁극적으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라며 “교육의 질을 보장해야 똑똑하고 우수한 인재를 대학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이들이 영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등록금은 치솟고 있다. 대학들이 이를 통해 부족한 재정을 메우고 있다는 얘기다. 러셀 그룹 대학의 외국인 학생 평균 등록금은 2017년 1만8000파운드에서 2만3750파운드로 올랐다.

유학생 비율도 늘었다. 러셀 그룹 대학 내 외국인 학부생 비율은 5년 전 16%에서 25.6%로 증가했다. 중국 출신 학생 수는 2015년 5만2000명에서 2021년 약 10만명으로 늘었고 인도 출신 학생도 9000명에서 8만7000명으로 급증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외국인 학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경우 대학 재정이 지정학적 요소 또는 정부 이민 규정과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해 취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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