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삶 ‘붙든’ 문화교실… “함께 배우니 살게 되더라”

디딤돌 문화교실서 만난 쪽방 사람들
그림 그리고 사진 찍으며 알코올중독·우울증도 나아져

남대문 쪽방 상담소에서 지난 9월 25일 김동윤씨가 그림수업을 들으며 꽃을 채색하고 있다. 남대문 쪽방 상담소 제공

하얀 벽에 오색의 꽃 그림이 걸렸다. 쪽방 주민들의 작품 전시회장이다.

“기분 좋습니다. 사람들한테 막 자랑도 하고 싶고….”

그림을 내건 김동윤(50)씨가 지난 16일 웃으며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13~17일 쪽방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디딤돌 문화교실’ 수료생들의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서울시청 본관 지하 1층에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국민일보는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한 김씨와 조인순(63)씨를 지난 16일, 17일 만났다.

남대문 쪽방에 사는 김씨는 이번 전시회에 붉은색 참다래꽃과 보라색 아이리스꽃 그림을 출품했다. 지난 4월부터 문화교실 수업을 들으며 완성한 작품이다.

김씨가 지난 16일 저녁 서울 중구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색종이로 모빌을 만들고 있다. 손재주가 좋은 그의 집 곳곳에는 종이 모빌 등 여러 공예품이 놓여있었다. 이서현 인턴기자

김씨는 자신을 손재주가 좋은 사람으로 소개했다. 그는 굵직하고 투박한 손으로 무엇이든 만들어내곤 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 겁도 나고 그랬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재밌고, 어느새 그림에 빠져들게 됐죠.”

지난 삶에서 그의 손재주는 밥벌이 수단이었다. 그가 공장 일을 시작했던 것은 1987년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겨울날이다. 집안 형편이 문제였다. 고향 충남 태안을 떠나 상경해야 했다. 집을 떠나는 날 어머니는 그에게 3만원을 쥐여줬다.

김씨의 서울살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종로 세운상가 뒤편의 한 스피커 공장에 취직했다. 코일을 감아 망가진 스피커를 고치는 게 그의 일이었는데, 금세 일을 배웠다. 그렇게 3년을 일하다 먼 친척의 소개로 빵집에 들어갔다. 제빵 일의 시작이었다.

“무섭게 배웠어요. 잘못하면 맞기도 하면서요.” 제빵 일은 쉽지 않았다. 새벽 5시에 시작한 일은 그다음 날 새벽 2~3시는 돼야 끝났다고 한다. 빵집에 달린 다락방에서 쪽잠을 잤다. 늘 잠이 부족하니 서서 일하다 꾸벅 졸았고, 튀김기에 손을 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예민한 감각으로 점차 능숙하게 반죽을 다루게 됐다. ‘언젠가는 작은 빵집 하나를 차리겠다’는 희망으로 18년간 서울의 빵집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일했다.

그런데 ‘죽어라 한 노동’은 일찍 몸을 고장나게 했다. 마흔을 못 넘기고 무릎이 아파왔다. 서서 해야 하는 제빵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내리막의 시작이었다. 집에 생활비를 부치느라 모아둔 돈도 머물 곳도 없던 그는 노숙을 했다. 서소문역사공원에서 박스를 펴놓고 잠을 잤다. 알코올 중독에도 시달렸다. “술 마시고, 고물 줍고, 노가다 나갈 수 있으면 나가고… 그런 식으로 여태껏 살았죠.” 그는 그렇게 지난날을 회상했다.

쪽방을 얻게 되면서 상황이 나아졌다. 디딤돌 문화교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봄이다. 남대문 쪽방 상담소에서는 매주 그림 수업이 열렸다. 선 긋는 것부터 시작해 사물을 따라 그리는 법을 알려줬다. 그곳에서 김씨는 처음 그림을 배웠다.

그는 그림을 그리며 술병을 내려놨다. 김씨는 “방 안에만 있으면 나쁜 생각에 빠지기 쉬워요. 술도 마시게 되고요. 그런데 수업을 나가고 사람을 만나면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죠”라고 말했다.

이제 그에게는 동네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이웃이 생겼다. 함께 그림을 그리고, 서로의 건강을 챙겨주는 사람들이다. 그는 “참 각별하다”며 “그분들이 열심히 참여하고 또 뿌듯해하는 걸 보면서 나도 참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조인순씨가 서울시청 본관 지하1층에서 열린 작품 전시회에서 동료들의 사진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이서현 인턴기자

창신동 쪽방 주민 조씨는 문화교실의 가장 성실한 ‘학생’이다. 문화교실이 문을 연 2014년부터 빠짐없이 사진 수업을 듣고 있다.

“숫자로 이야기하면요, 처음에는 1점이었으면 지금은 6점 정도요.”

그는 자신의 실력을 이렇게 평가했다. 사진을 향한 배움에는 끝이 없었다. 문화교실에서 출사를 갈 때면 꼭 참여했고 교실로 돌아와 선생님께 다시 조언을 듣기도 했다. 평소 휠체어를 타 거동이 편치 않지만, 사진을 위해서라면 서울 방방곡곡을 찾아다녔다.

조씨의 삶에서 사진 촬영은 늘 가질 수 없는 취미였다. 그는 “(사진에) 관심은 있었는데 워낙 시간이 없었죠. 사진기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라고 말했다.

그는 40여년을 식당 주방에서 보냈다. 일을 시작한 것은 스물한 살이던 1981년이다. 돈을 벌기 위해 고향 경남 합천에서 상경한 그는 친척의 소개로 식당 주방에 들어갔다. 오전 8시에 식당에 나와 밤 10시까지 일을 했다. 냉면부터 시작해 육개장과 돼지갈비 등 한식 요리법을 익혔다.

건강이 문제였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던 그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일을 그만둬야 했다. 국숫집을 차리겠다는 그의 꿈도 접었다. 그때쯤 남은 재산도 탕진하고 심각한 생활고를 겪었다. 쪽방으로 이사한 뒤 우울증이 시작됐다.

그때 쪽방 상담소는 조씨에게 사진반을 권했다. 그곳에는 카메라가 있었다. 조씨는 “처음 수업에 들어가 작가님과 인사를 나눴을 때가 생생하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잊고 지내던 사진과 드디어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조인순씨가 지난달 서울 종로구 낙산에 찍은 일몰 사진. 그는 "해가 눈에 들어오는 그 순간의 모습을 담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조씨 제공

사진을 배우며 그의 우울증도 차츰 나아졌다. “처음에는 밖에 나가 남들과 이야기를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죠. 그런데 사진을 찍고 함께 밥을 먹으며 (우울증이) 차근차근 없어졌어요.”

그의 배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는 “잘하진 못해도 더 많이 찍어보고 싶다. 함께 출사를 나가서 이리저리 찍어보고 대화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시와 현대엔지니어링이 운영하는 디딤돌 문화교실은 쪽방 주민들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한 문화교육 프로그램이다. 2014년 문을 열어 현재까지 쪽방 주민 294명이 수료했다.

이서현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