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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전위 작가들, 눈부신 ‘팔순 청춘’展

국내 실험미술의 원조 이승택·김구림, 단색화 대표주자 하종현 나란히 전시

60∼70년대 전위 작가들, 눈부신 ‘팔순 청춘’展 기사의 사진
1974년 전시한 설치 작품 앞에 선 젊은 시절의 이승택 작가. 비조각, 비미술을 연구했던 그가 독창적으로 선보인 작품은 지금은 ‘입체 드로잉’으로 명명돼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1960, 70년대 외롭게 추구됐던 실험미술은 당시 주류미술이었던 단색화와 함께 한국 현대미술을 이끈 주요 장르로 각광받고 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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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랑가, 노익장이 화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팔순 안팎 원로 화가들의 개인전이 눈부시다. 청춘 부럽지 않은 열정으로 팔뚝을 휘두른 신작전이 있는가하면, 수십 년 전 작품이 재해석돼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주인공은 실험미술의 원조 이승택(83)·김구림(79) 작가와 단색화의 대표주자 하종현(80) 작가다. 실험미술과 단색화는 각각 1960, 70년대 박정희 정권 하에서 국전에 반대하며 나타났던 아방가르드 미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이승택 개인전 ‘드로잉’(18일까지)은 작가가 50년대 후반부터 즐겨 사용한 재료인 노끈(밧줄)에 주목한 기획전이다. 전시장 벽면 통째를 거대한 사선으로 리드미컬하게 그은 듯한 작품은 노끈을 활용한 설치물이다. 밧줄 중간 중간의 매듭은 점 같은 효과를 낸다. 노끈이라는 선과 매듭이라는 점이 만들어내는 입체 드로잉인 셈. 노끈 연작의 시발점이 된 1957년 작 ‘고드렛돌’(돗자리 짤 때 실을 매단 돌)에서부터 60∼80년대를 거치며 사선과 곡선, 혹은 여인의 몸매를 연상시키는 형상 등 다채롭게 변주된 노끈 입체 드로잉이 전시 중이다. 홍대 조각과 출신인 작가는 “비조각, 비미술을 연구하다가 벽면에 그림 아닌 조각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회상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실험적 작품이기에 팔리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열정을 멈출 수 없어 생계는 정부에서 수주한 동상 제작으로 해결했다. 대학시절 스승 김경승 조각가의 동상 제작을 돕다 시작된 작업이 평생의 생업이 된 것이다. 인천의 맥아더 장군 동상 등을 제작했다(02-2287-3500).

70년대부터 퍼포먼스, 개념미술, 실험영화 등을 선보였던 김구림 작가는 신작을 내놓았다. 종로구 수송동 OCI미술관에서 40대 작가 김영성과 2인전 ‘그냥 지금 하자’전(25일까지)을 갖고 있다. 전시에는 회화, 입체, 콜라주, 영상 등이 나왔다. 물질문명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지에 대한 비판의식이 전체 작품을 관통한다. 플라스틱 해골 모형, 전자제품 부품 등의 오브제가 캔버스에 부조처럼 콜라주 돼 있는 작품, 거대한 무덤 안에 미라를 설치한 작품 등이 특히 그러하다(02-734-0440).

국제무대에 한국의 단색화를 알리는 데 앞장섰던 국제갤러리에서는 하종현 작가 개인전(18일까지)을 마련했다. 70년대부터 선보인 ‘접합’ 연작의 새로운 버전 10여점이 구작과 함께 전시됐다. 접합은 캔버스 천을 대신한 마대의 양면을 모두 활용하는 작업방식으로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마대 뒷면에서부터 물감을 짓이겨 밀어올리고 이를 질료삼아 마대 천 앞면에서 붓질의 행위를 통해 격자무늬 등을 만들어낸다. 신 버전에는 과거 없던 스트라이프 무늬가 등장한다. 굵은 스트라이프는 목수가 힘차게 대패질한 듯, 혹은 큰 붓으로 일획을 그은 듯 마티에르가 살아있다. 끝부분은 물감을 덩어리째 말아 올려 부조의 효과까지 노린다.

6·25전쟁 이후 미군의 원조 구호물자를 담거나 참호에서 모래주머니로 쓰이던 천이 마대다. 배고픔과 전쟁의 상징으로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이지만, 단색화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 마대 자루는 역설적으로 ‘풍요의 퍼포먼스’ 같다.

김미경 강남대 교수는 “서구에서 중국, 일본에 이어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수년전부터 커지면서 실험미술과 단색화가 조명 받고 있다”면서 “두 흐름이 태동한 시대적 배경은 비슷하다. 하지만 단색화가 70, 80년대를 풍미한 엘리트 미술이었다면 실험미술은 체제 저항적인 언더그라운드로서 비주류를 면치 못했다”고 말했다. 과거 상황은 달랐지만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러 국제무대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주자로 나란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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