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신인들 진입 어렵게 하는 ‘그들만의 리그’ 국회

[창간 31주년, 머나먼 공정사회] 정치관계법 개정은 소극적


지난해 7월 출범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활동 기간 내내 ‘반쪽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개의 소위원회 중 선거제 개편을 다룬, 즉 ‘게임의 룰’을 바꾸는 제1소위원회에만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됐다.

바뀌는 선거법에 따라 자신의 지역구가 사라질 수도, 당선 여부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여야 모두 사활을 걸고 자기 목소리를 냈다. 진영과 관계없이 현역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공정한 게임의 룰’을 강조했다.

반면 참정권 확대, 선거의 공정성 제고 등 정치제도 전반의 개혁을 다룬 제2소위원회는 내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선거 관련 규제를 풀어 정치 신인과 현역 의원들 사이의 불공정한 경쟁 환경을 개선하자는 데 목적이 있었지만, 의원들은 ‘현역 프리미엄’을 포기하는 데 선뜻 나서지 않았다. 회의만 8차례 연 것이 활동의 전부다. 의원들이 자기 밥그릇이 달린 일에는 ‘공정’을 부르짖으면서,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해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을 바로잡는 일은 외면한 셈이다. 정개특위 2소위 위원이었던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직의 이점을 누리는 것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고 자책했다.



실탄 확보부터 불공정한 경쟁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의 경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싸움에 비유할 수 있다. 정치 활동에 필요한 ‘실탄’을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격차가 엄청나다.

어느 정당에서 영입한 청년 인재 A씨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서울 모 지역구의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이 된 A씨는 내년 총선 공천을 받기 전까지 지역구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야 한다. 다음 선거에서 현역 의원의 자리를 뺏어올 적임자가 자신이란 것을 당원과 유권자들에게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현역 의원이 지역구 사무실을 두고 지역 관리에 나설 수 있는 것과 달리 원외에 있는 정치 신인은 법적으로 지역 사무실을 열 수가 없다. 그래서 A씨는 무슨무슨 포럼이나 연구소와 같은 개인 조직을 거점으로 삼아 지역 활동에 나서게 된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직원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로만 월 500만~700만원의 고정 비용이 나가게 된다. 당원들에게 문자메시지도 보내고, 거리에 현수막을 내거는 일도 필요하다. 보통 문자메시지는 건당 50원, 현수막 설치에는 장당 1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여야가 특정 정치 현안으로 첨예하게 대립해 홍보전을 벌일 때나 명절 인사를 해야 하는 날에는 문자 및 현수막 비용으로만 수백만원이 나간다.

이런저런 비용을 다 합치면 A씨 같은 정치 신인이 출마하고자 하는 지역구를 관리하는 비용으로 통상 한 달에 최소 1000만원, 많게는 200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도 선거가 없는 해에 그렇다는 얘기고, 운 좋게 공천을 받아 선거를 치르게 되면 비용은 억대로 치솟는다.

정치 신인은 이런 정치 비용을 모두 자비로 부담한다. 현행법상 현역 의원이 아닌 자의 후원금 모금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원외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은 선거 기간에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전까지는 후원회를 통한 모금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반면 현역 의원은 선거가 없는 해에도 후원회를 개설해 1억5000만원까지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다.

여력이 있는 정치 신인은 집안에 손을 내밀거나 저축해둔 돈을 사용하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은 은행권의 대출을 받아 선거자금을 충당한다. 자유한국당이 영입한 일부 청년 정치인들은 지역구 활동을 위해 억대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 변호사, 검사 등 ‘사’자가 붙은 전문직이 아닌 청년들, 속칭 ‘흙수저’ 출신은 정치권 진입이 애당초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야당에서 지역구 활동을 하고 있는 B씨는 “선배들이 ‘차떼기 정치’로 수천억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한 뒤 문제가 돼 정치자금법이 개선된 것 아니냐. 그 짐을 정치적 약자인 우리가 다 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장에선 ‘공천을 받아 당선되지 못하면 선거법을 어겨 범법자가 되거나 빚쟁이가 된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몸으로 때우기도 현역에 유리

선거운동 규정 자체도 현역 의원에게 유리한 측면이 많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말 또는 전화로 하는 선거운동은 대선을 제외하고는 선거일 13일 전부터만 가능하다. 현역 의원보다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으로서는 홍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역 의원은 분기마다 의정보고서를 발간해 자신의 치적을 홍보할 수 있고, 각종 지역구 행사에서 발언권을 얻어 인지도를 높일 수도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치 신인은 선거 기간이 아닐 때는 유권자가 요청하지 않는 이상, 이름과 소속을 말할 수도 없고 명함을 돌릴 수도 없다. 네거티브 방식의 엄격한 선거법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심화시키는 구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현행 선거제도가 정치 신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고 보고 지난 10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정개특위에 제출했다. 엄격히 규제하던 선거운동을 보다 자유롭게 해서 정치 신인들의 기회를 넓혀주자는 취지였다. 선관위가 낸 안에는 후보자 등록을 조기에 실시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기존 규정에 따르면 대선은 선거일 24일 전부터, 총선과 지방선거는 20일 전부터 후보로 등록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이를 선거 종류와 상관없이 40일로 확대하자는 안이다. 후보 등록 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비현역 정치인들이 제도적 차별 없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의미여서,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개특위 2소위는 지난 4월 이후 단 한 차례의 회의도 열지 않고 빈손으로 활동을 끝냈다. 정치 신인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정치자금법 개정 문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 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9일 “2000년대 이후 정치 신인을 위해 관련법 개정 의견을 꾸준히 냈지만 결국 입법은 국회의 몫”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심우삼 박재현 기자 s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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