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한국의 ‘혁신지수’는 올해 6위(141개국 대상)다. 세계 최상위권으로 지난해보다 두 계단 더 높아졌다. ‘6’이라는 숫자만 놓고 보면 한국은 누구나 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로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는 나라다. 하지만 실제로는 혁신적인 제품·서비스를 내놓아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는 스타트업을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벤처업계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규제’를 원인으로 꼽는다. 한국의 규제는 2015년 기준으로 1만4688개에 이른다. 필요한 규제와 불필요한 규제가 뒤섞여 있다 보니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옭아매는 일이 벌어진다.

그나마 있는 규제는 지키면 된다. 법·제도 정의조차 없는 새로운 산업은 규제 사각지대에 서 있는 탓에 갑작스레 철퇴를 맞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창업 후 사업이 본격화할 시점에 이르면 기존 규제에 끼워 맞추려는 움직임과 직면한다. 첫 단계는 유사한 제품·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존 기업, 신산업 등장으로 피해를 보는 기존 산업에서 ‘불법’이라고 반발하는 것이다. 이어 정부가 행정해석을 내리면서 개입한다. 11인승 이상 승합차로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타다’, 빈집을 활용한 숙박공유 플랫폼 ‘다자요’가 대표적 사례다. 타다처럼 검찰 수사를 받는 일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규제공백’이라고 부른다. 현행 규제에 없는 새로운 사업이 태동하면 규제 담당 공무원들이 기존 규제를 해석해 확대 적용하는 ‘행정 관성’이 발동한다. 짧은 시간의 차이로도 성패가 갈릴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산업에선 치명적이다. 규제공백이 사실상 혁신 기업의 성장판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규제 때문에 부가가치를 높이지 못하면 아무리 혁신 기업이라도 생산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 한국 산업계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노동생산성은 34.2%(2016년 기준)에 그친다. 벤처기업 1세대인 고(故)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규제 중독과 이에 따른 기업가정신 위축을 ‘한국이 앓고 있는 병’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정부도 마냥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6월 설치한 혁신성장본부를 올해 4월 범부처 혁신성장추진기획단으로 격상해 가동 중이다. 13차례에 걸쳐 데이터·인공지능(AI), 플랫폼 경제, 스마트산업단지, 미래차 등의 신산업 분야 진흥책을 내놓았다. ‘규제 샌드박스’를 가동해 377건의 규제를 ‘선 허용-후 규제’ 식의 포괄적 네거티브로 전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1만5000개에 가까운 규제 중 일부다. 창업 기업 입장에서는 아직 상대해야 할 규제, 앞으로 생겨날 규제가 더 많다고 느낀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10일 “정부의 규제 개혁 효과는 특정 업종 및 지역에 국한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세종=신준섭 이종선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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