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1만호] 노골적 애국주의 ‘궈차오 열풍’ vs 최소 현상 유지 ‘탕핑주의’

[베이징특파원 리포트] 성장의 그늘… 중국 MZ세대 두 얼굴


지난 18일 중국 베이징대. ‘청춘의 화려한 문장을 조국 땅에 쓰다’는 주제로 열린 행사에서 대학원생 쑹시(27)가 연단에 올랐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과 교육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청년들에게 양질의 사상을 전달한다며 만든 온라인 플랫폼의 발대식이었다.

‘지우링허우’(90后·1990년대생)인 쑹은 중국 정부가 청년의 표상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다. 베이징대 심리학과 재학 중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당시 여성 대원으로는 유일하게 아덴만에 파병됐다. 2017년 4월 호송 임무 도중 해적에게 피랍된 시리아 국적 선원 19명을 구조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영웅담이다. 쑹이 입대한 2015년 중국 전역에서 80만명의 대학생이 입영 신청을 했다. 2020년엔 그 숫자가 120만명으로 늘었다. 2018년 5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베이징대를 방문했을 때 쑹은 학생 대표로 시 주석 앞에 서서 “민족 부흥의 임무를 담당하는 시대의 인물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중화주의로 무장한 중국의 MZ세대

애국주의는 중국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태어나면서부터 부상하는 조국의 모습을 보고 자라난 이들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중국인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도 강하다. 애국주의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지난 20일 베이징 왕푸징에서 만난 푸모(29)씨도 “중국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경쟁하는 나라”라며 “정치체제와 사회제도가 다르다고 중국을 낮춰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원 강사인 그는 “미국에선 인종차별과 총기 사고로 인한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반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를 극복했고 그 기세를 몰아 앞으로 더욱 성장할 일만 남았다”고 덧붙였다.

중국 청년들의 애국주의가 밖으로 표출된 것 중 하나가 ‘궈차오’ 열풍이다. 중국을 뜻하는 궈(國)와 트렌드를 의미하는 차오(潮)를 합친 이 말은 해외 브랜드 대신 중국 기업이 만든 상품을 소비하는 현상이다.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티몰 등에 궈차오를 입력하면 관련 해시태그가 붙은 각종 상품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중국에선 MZ세대가 주도하는 애국주의 소비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2018년을 궈차오 원년으로 삼고 있다. 매년 5월 10일을 중국 브랜드의 날로 정해 소비 진작을 위한 대대적인 마케팅도 펼친다. 2035년까지 경제성장 전략으로 내수 중심의 쌍순환을 택한 중국으로선 MZ세대의 애국 소비가 큰 원동력인 셈이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올해 중국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상 교육을 한층 강화했다. 시 주석은 지난 3월 모교인 칭화대를 방문했을 때 “청년들은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굳건하게 전진할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 주석의 청년 메시지에는 늘 중화민족의 부흥, 중국몽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단오절 연휴였던 지난 19일 톈진에서 열린 중국청년음악제 역시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는 대합창으로 막을 열었다. 인터넷 생중계로 음악축제를 지켜본 1300만명의 네티즌들은 “노래 하나하나에 선열의 뜨거운 피가 담겨 있다”며 감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공산당의 저변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공산당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당원 수는 9191만명으로 이 중 40세 미만이 3110만명으로 3분의 1을 차지한다. 학생 당원도 196만명에 달한다. 중국은 다음 달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행사를 앞두고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대국굴기에 저항하는 ‘탕핑주의’

중국에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MZ세대가 있다면 한편에선 드러누워 저항하는 ‘탕핑주의’가 퍼지고 있다. 일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으며 집이나 차를 사지 않고 최소한의 생계비로 가만히 누워 지낸다는 의미다. 지난 4월 중국의 한 20대 청년이 SNS에 올린 “탕핑이 바로 정의다”는 글이 도화선이 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기엔 열심히 일해봤자 자본가의 노예가 돼 착취만 당할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최소한의 욕망만 유지하며 살겠다는 좌절감이 담겨 있다.

중국에서 20년 넘게 사업하고 있는 중국동포는 “자포자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공산당 치하의 빈부격차와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라며 “당이 14억 인민이 잘사는 샤오캉사회 달성을 성과로 내세우는 상황에서 탕핑주의는 없애야 할 그림자”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탕핑주의는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공산당에 대한 조용한 저항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중국이 경제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고취시키는 일과 소비에 대한 태도, 행동양식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중국 MZ세대에서 나타나는 애국주의와 탕핑은 급속한 경제성장이 가져온 양면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은 점진적으로 발전해서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도약해야 하고, 도약하다 보면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해결하는 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베이징 컨센서스’가 있다”며 “그로 인한 성과와 부작용은 한동안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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