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1만호] “무명 목회자도 영향력 끼칠 수 있다는 것 국민일보가 보여줘”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 <1>

국민일보가 1만호의 위업을 이루기까지 함께한 한국교회 목회자가 있다. 무명의 목회자 시절부터 교계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되기까지 신문에 실린 기사를 통해 해당 목회자의 사역 스토리를 소개한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24일 서울 종로구 한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자신의 사역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27세 전도사 때 서울 가락동 지하실에서 개척한 교회는 분당 구미동을 거쳐 용인 죽전의 성전으로 커졌다. 강민석 선임기자

소강석 목사는 군산제일고 3학년 시절 예수 믿고 신학교에 가려 한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난다. 그가 간 곳은 광주신학교(현 광신대)였다. 소 목사는 “광주신학교 시절, 매일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님의 성대모사를 할 정도로 조 목사님은 나의 목회 모델이었다”면서 “무등산에 올라 막대기를 들고 울창한 숲을 향해 설교연습을 하며 부흥의 꿈을 꿨다”고 했다.

신학교 2학년 시절인 1981년 전남 화순 백암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까지 완공한다. 85년까지 혹독한 목회훈련을 받은 소 목사는 88년 11월 송파구 가락동에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8만원짜리 지하상가를 얻어 새에덴교회를 개척한다.

소 목사가 국민일보에 처음 등장한 것은 93년 9월 15일이다. ‘국민일보 발전을 위한 교역자 간담회’가 회의실에서 열렸는데, 소 목사는 이황의 김영택 김창수 목사 등과 참석했다. 다음 달 11일 소 목사는 ‘늘 희년의 은혜 넘치게’라는 가정예배 원고를 썼다.

소 목사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96년부터다. ‘30대 중반의 목회자로 분당 신도시에 1000평이 넘는 예배당을 완공하고 출석 성도 1200명이 넘었다’는 기사가 국민일보에 실렸다. 규장출판사에서 기사를 읽고 책을 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28쇄를 찍은 베스트셀러 ‘맨발의 소명자’가 그렇게 나왔다. 이때부터 소 목사는 ‘3M’(맨발, 맨땅, 맨손) 목회자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 목사는 “국민일보 기사를 계기로 ‘맨발의 소명자’가 나왔고 그때부터 교회 개척자 사이에서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면서 “나 같은 무명의 목회자도 부흥의 꿈을 가지면 얼마든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국민일보가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무인가 신학교 출신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개혁 소속이었던 소 목사는 자랑할만한 ‘스펙’이 없었다. 하지만 국민일보 보도 이후 청소년 연합캠프, 전국사모세미나, 별세목회연구원 강사로 서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미주 한인교회에서도 단골 강사가 됐다.

99년부터 가정예배인 ‘오늘의 만나’, 2002년부터는 ‘로뎀나무’ 목양칼럼을 매주 목요일마다 게재했다. 그해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후 ‘새 대통령과 21세기 한국’이라는 글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통령, 성실과 정직이 삶에 밴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제안했다.

소 목사는 “일반적으로 말에 능한 부흥사들은 성경의 베드로처럼 설교는 잘하지만 글을 못 쓴다는 인식이 있었고, 학자풍의 목회자들은 바울처럼 글은 잘 쓰는 반면 스피치에 능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했다”면서 “감사하게도 국민일보 연재 칼럼과 책 출판을 통해 ‘목회 야성이 있으면서도 필력도 갖추고 있다’는 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2003년 7월 새에덴교회가 용인 죽전지구 내 550억원을 투입해 성전을 기공한다는 뉴스가 실렸다. 당시 550억원은 큰돈이었다. 출석 교인이 3500여명일 때다. 40대 초반의 목회자는 숱한 난관을 눈물의 기도로 극복하고 2005년 11월 지하 4층, 지상 9층의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완공한다. 그는 타 교단 목회자세미나와 교회성장 세미나에 주강사로 자주 섰다.

2005년 교단이 통합되면서 예장합동 소속이 된 그는 한일기독의원연맹, 해외 유학생 수양회, 미주 한인의 날 제정 감사예배,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초청 예배 등을 이끌었다. 2016년, 2018년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에서도 설교했다. 2019년 미국 국가조찬기도회 ‘런천 프레이어’에서 한국인 최초의 설교자가 됐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2007년부터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시작한다. 이슬람 수쿠크법 저지, 동성애 옹호·조장하는 차별금지법 저지운동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지난해 구 개혁 측 출신으로는 최초로 투표 없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의 총회장이 됐다. 동시에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소 목사는 “국민일보 기사를 통해 책이 나오고 미션면 칼럼을 계기로 2014년부터 중앙 일간지 칼럼이 게재되기 시작했다”면서 “이처럼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나의 목회 곳곳마다 국민일보가 함께했다”고 말했다.

그의 목회스토리와 생명나무신학은 2020년 ‘소강석 목사의 꽃씨 목회’ 시리즈를 통해 소개됐다. 요즘 최대 관심사는 국민일보 ‘연합기관, 이제는 하나 될 때다’ 시리즈의 주제인 한국교회 연합과 교회세움 사역이다.

소 목사는 “지금도 새벽예배 후 어김없이 국민일보를 펴며 목회를 시작한다”면서 “앞으로도 한국교회를 대변하는 국민일보에 큰 물길을 여는 필진, 논객으로 활동하고 싶다. 교회 생태계를 구축하며 시대를 선도하는 공적 교회의 길을 제시하는 게 나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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