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 세대와 동승한 메타버스… 동행길 끝의 미래는?

[신년특집] 제페토서 3주간 체험해보니…
이용자 90%는 전세계 10대가 차지
크리에이터 활동… 유료 결제는 장벽
불확실한 세상 준비, 기성세대 숙제

모닥불이 탁탁 소리를 낸다. 별빛에 둘러싸인 자정의 캠핑장. 의자 6개가 모닥불 주변에 놓였다. 저마다 의자에 앉은 5명은 말없이 '불멍'(모닥불 바라보기)을 한다. 대화는 없다. 적막 속 계속되는 불멍. 오로라가 펼쳐진 밤하늘에 유성우가 떨어진다. 이곳의 풍경과 소리는 진짜가 아니다. 네이버 제트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매일 1만명 이상 찾는 '캠핑'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현실에서 하기 어려워진 캠핑을 대리만족하기에 딱이다.


다른 쪽에선 왁자지껄한 대화가 오간다. 방장의 성향과 어울리는 이용자만 남고 나머지는 퇴장하는 게임 ‘강취대’(강제 퇴장 취향 대회)는 초등학생 고학년부터 중학생 연령대에 인기 콘텐츠다. 게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며 친구가 되거나 ‘크루’(모임)를 결성한다. 알파세대에게 이곳은 재미있는 놀이 공간이자 또 하나의 세상이다.

제페토는 미국 로블록스와 함께 메타버스에서 성공을 이룬 투톱 플랫폼이다. K팝 스타의 비대면 공연도, 구찌·디올 같은 명품 브랜드 쇼핑도, 크리에이터로 사는 것도 가능하다. 2021년 3분기 말까지 이용자 2억 4000명이 몰렸고, 150만명 넘는 크리에이터가 활동 중이다. 이용자의 90%가 전 세계의 10대다. 게임은 해봤지만 메타버스가 낯설기만 한 40대, 20대 기자가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살아본 적 없는 ‘알파세대’ 2명과 함께 3주간 제페토에 들어가 봤다.

“게임과 다를 게 뭐야?”

제페토에선 증강현실(AR)의 얼굴 인식 기능을 활용해 이용자를 닮은 아바타를 생성할 수 있다. 지난달 1일 제페토 체험을 시작하면서 기자의 나이와 성별을 그대로 적용해 아바타를 만들었다. 8500코인이 무료로 지급됐다. 코인은 매일 접속하거나 콘텐츠를 이용하는 활동량에 따라 늘어나는 게임머니. 하지만 이것으론 부족하다. 유료 결제로 얻을 수 있는 제페토 내부의 통화, ‘젬’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구매 욕구를 일으키는 아이템과 콘텐츠는 젬으로 살 수 있다.

기존 게임에 익숙한 어른들에게도 제페토는 낯설다. 다중 이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과 제페토의 활동 방식이 다르다 보니 현실 세계에서 알고 있던 기업이나 기관, 학교 등을 먼저 둘러보게 됐다. 아바타 생성 후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증권사 미래에셋의 제페토 지점. 서울 중구 을지로 본사 ‘센터원’을 제페토 안에 재현해 놓은 곳이다. 하루 100명 안팎이 둘러보고 가는데 실제 증권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진 않는다.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이 오프라인 영업점을 줄여가면서 제페토 등 메타버스 지점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며 “앞으로 계좌 개설, 환전, 실전 투자게임 같은 서비스가 메타버스 안에서 상용화될 때 성공 모델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연예인 계정을 찾아보니 제페토의 장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방탄소년단(BTS)과 함께 K팝을 선도하는 블랙핑크는 제페토에서 팬 사인회를 진행, 4600만명을 만났다. 에스파는 ‘아이(ae)’라는 이름의 아바타로 팬들을 결집해 소통하고 있다. ‘기존의 게임과 뭐가 다른 거지?’ 어른의 눈으로 본 메타버스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밑그림에 불과했다.

“다가올 미래, 준비는?”

알파 세대인 2009년생 홍모(가운데)양과 2010년생 김모(왼쪽)양이 지난달 6일 서울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네이버 제트 메타버스 제페토에서 팔로어를 늘리는 방법을 20대 송태화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철오 기자

기자와 함께 제페토 체험에 나선 알파세대 2명을 지난달 6일 서울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만났다. “아바타에 집중하세요. 이렇게 무성의하게 아바타를 꾸미면 안 돼요.” 2009년생 홍모양은 제페토 안에서도 현실의 사람을 만날 때처럼 용모와 언행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0년생 초등학생 김모양은 “‘인싸’가 돼야 해요. 팔로어를 늘려가는 게 제페토의 진짜 재미거든요”라고 했다.

알파세대의 조언을 들으니 제페토 안에서 보이는 풍경과 들리는 소리가 달라졌다. 인싸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인증샷을 모아봤다. 커피 브랜드 이디야의 ‘포시즌 카페’에서 스케이트와 보드를 즐기고, 편의점 CU의 ‘한강공원’에서 신상품 먹거리를 손에 들고 한강과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셀피를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좋아요’와 댓글이 따라왔다. 제페토에서 제작된 웹드라마를 유튜브로 시청하고, 밤마다 ‘캠핑’을 찾아 불멍하며 하루의 긴장을 푸는 날이 반복됐다. 기존의 게임에서 느낄 수 없던 소통과 치유의 즐거움이 쌓여갔다.

그래도 알파세대처럼 누리지는 못했다. 제페토 체험을 끝낸 기자의 팔로어는 고작 5명. 알파세대 홍양은 같은 기간에 41명의 친구를 만들었다. 이들에게 제페토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고립된 시대에 친구를 늘려가는 가장 손쉬운 창구였다. 친구와 소통하는 SNS 겸 메신저이자,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뮤직비디오를 시청하는 동영상 플랫폼이었고, 상품을 둘러보고 구매하며 전자상거래 사이트로도 활용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매 순간 현실 세계를 기준으로 제페토를 바라보고 평가했지만 알파세대에겐 제페토가 그냥 그 자체로 하나의 세상이었다.

넘을 수 없는 벽이자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유료결제였다. 패션 브랜드의 제페토 매장에서 옷과 가방으로 장식하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려 보니 유료결제의 욕구가 찾아왔다. 아이들은 체험을 끝내면서 “더 많은 젬이 있었으면 더 많은 곳을 경험하며 친구를 늘렸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아직 경제활동을 해본 적 없는 알파세대들이 나쁜 길로 빠져들기 좋은 구조다. 홍양은 “제페토는 자본주의에요. 누가 젬을 주겠다면서 말을 걸면 쉽게 혹하게 돼요”라고 했다.

올해 하반기 ‘애플 안경’ 같은 확장현실(XR) 장비가 출시된다. 이런 장비가 등장하면 메타버스와 실생활의 연결이 실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상과학(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 미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무엇도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디지털 세계의 일원이 되기에 주저함이 없는 알파세대는 기성세대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그 세상을 살아가리란 점이다. 그 불확실한 세상을 제대로 준비하는 일이 기성세대의 큰 숙제로 남아있다.

김철오 송태화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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