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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방도 사치” 하루 8100원짜리 방에서 꿈 키우는 청춘들

<1> 내 집은 ‘게하’

지난달 29일 한 청년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소재 게스트하우스 내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곳에선 1만원 안팎의 값을 지불하면 하루를 묵을 수 있다. 윤성호 기자


서울 땅에서 가장 값싸게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곳. 보증금도, 계약 기간도 없이 언제든 더 나은 곳을 찾아 훌훌 떠날 수 있는 장소. 새로운 도전과 소망을 위해 상경한 많은 청춘은 날이 저물 무렵, 이곳 서울 마포구의 2층짜리 단독주택에 하나둘 들어선다. 하룻밤을 보내는 데 채 1만원도 들지 않는 게스트하우스.

이 집은 9년 전 ‘둥지’라는 뜻의 간판을 달고 게스트하우스로 문을 열었다. 발 디딜 곳 없는 청춘들이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때까지 품어주고자 하는 보금자리인 듯했다. 불안한 시절을 통과 중인 청년들은 코로나19로 미래가 더욱 흐릿해진 상황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국민일보는 이곳에서 만난 청년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2022년 새해를 맞는 ‘청춘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고달픈 현실에서도 내일을 말하는 청년들의 새해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달 13일부터 2주 동안 서울 마포구 게스트하우스 7곳을 찾았다. 여기에서 본 20명 청춘의 삶은 신산했지만, 꿈을 말할 때의 눈빛은 더없이 빛났다.


지난달 22일 오전 9시. 투숙객 2명이 서울 마포구 연남동 A게스트하우스 공용 화장실 앞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수건을 한 장씩 든 채 줄을 섰다. 미리 줄을 서지 않았다가는 순서가 밀려 아침 세면 시간이 마냥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열자 투숙객들이 자신의 이름을 스티커에 적어 붙여놓은 고추장, 참치 통조림, 캔맥주 등으로 빽빽했다. 행여 다른 투숙객이 가져가 먹지 못하도록 ‘영역 표시’를 한다고 했다.

집 내부엔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부엌은 있지만 밥을 먹을 공간이나 테이블은 따로 없다. 저녁 시간이 되면 투숙객들은 거실 소파에 앉아 컵라면을 무릎에 올려놓고 먹거나 자기 침대에 엉덩이만 걸쳐 놓고 휴대전화로 유튜브를 시청하며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 값싼 투숙비를 감안할 때 이 정도 불편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마저도 ‘풀방’(투숙객이 많아 방이 꽉 찼다는 뜻)이 되면 근처 게스트하우스를 알아봐야 한다. 하루 단위로 옮겨 다니는 삶을 사는 이유를 묻자 전석범(27)씨는 “아직 취업도 못 하고 떠돌이처럼 사는 내게 게스트하우스가 딱 맞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전씨는 지난달 13일 고향인 충남 천안을 떠나 무작정 상경했다. 전씨의 전 재산은 200만원. 이마저도 인터넷은행에서 무직자도 신청 가능한 ‘비상금 대출’을 통해 최대한도를 받아 마련한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가져본 적 없는 전씨가 모을 수 있는 목돈은 없었다.

문제는 ‘서울살이’를 위한 숙소였다. 상경 첫날에는 서울 중구 명동의 1인실 호스텔에서 보냈다. 1박에 2만5000원이었다. 전 재산 200만원을 털어 넣어도 3개월을 버티지 못할 것이란 계산이 섰다. 서울에서 더 오래 버티기 위해선 값싼 숙소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숙소 예약 애플리케이션(앱)에서 가격순으로 정렬했더니 1박에 8100원인 곳이 나왔다. 전씨는 “하루만 늦게 예약했어도 마감돼 인근 9000원짜리 게스트하우스를 구할 뻔했다”며 “900원을 아꼈다”고 했다. 낯선 8명과 함께 방 1개를 이용하는 가격이었다.

전씨는 이날 군복 차림이었다. 그는 “군복과 전투화가 편하고 튼튼해 이걸 입고 상경했다”며 “옷 사고 꾸밀 시간과 돈이 아까워 군복을 일상복처럼 입는다”고 했다. 매일 메고 다니는 군용 배낭에는 토익·토플책, 대학원 입시 전형 자료가 담겨 있었다.

상경 다음 날 전씨는 서울의 한 대학 입학처에 찾아가 대학원 진학 문의를 하고 왔다고 했다. 인터넷을 두고 굳이 직접 서울에 올라와 발품을 파는 이유를 묻자 전씨는 “직접 학교를 찾아가서 캠퍼스를 보면서 진학을 문의하고 싶었다”며 “지방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배울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서울에 오기 전 전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아버지도 아들이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씨는 올해 초 공무원 준비를 그만뒀다. 그는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겠다 싶어서 지금이라도 공부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씨의 꿈은 대학원에서 국제학이나 인권을 공부한 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 대학원 준비도 준비지만 당장은 서울살이가 걱정이다.

식당 설거지, 택배 상하차, 편의점 캐셔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그는 서울에서도 당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원 준비를 병행할 생각이다. 전씨는 이날도 군용 배낭 속 짐을 완전히 풀지 못하고 있었다.


전씨가 머무는 곳 인근 B게스트하우스에는 김창규(가명·19)씨가 3개월째 살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3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인 충남 보령을 떠나 상경해 스포츠센터에서 행정사무 일을 하고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인근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45만원짜리 원룸을 구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시설이 열악했다. 층고가 낮아 키가 177㎝인 김씨조차 제대로 설 수 없었다. 가구라고는 책상과 TV만 있었고, 잠은 바닥에서 잤다.

원룸에서 6개월을 버틴 김씨는 숙박 앱을 통해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했다. 가장 싼 8인실을 한 달 단위로 30만원씩 내고 있다. 하룻밤에 1만원 수준의 값이다. 김씨는 “잠만 자면 되기 때문에 괜찮다”며 “무엇보다 ‘비싸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씨가 묵는 게스트하우스 9호실은 4층 입구에서 성인 남자 2명이 나란히 서기도 어려운 좁은 통로를 지나 오른쪽으로 두 번 돌아야 나오는 가장자리다. 그의 자리는 9호실 안에서도 창가 끝자리다. 투숙객들이 선호하지 않는 곳이지만 상관없다고 했다. 김씨는 “고향에서도 워낙 어렵게 살아와서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침대에 몸을 누이는 밤이 되면 창문 너머로 번쩍이는 술집 간판과 그 주변을 오가는 또래 젊은이들이 보인다.

가장자리의 가장자리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의 목표는 ‘내 집 마련’이다. 그것도 서울에 아파트를 사는 것이 꿈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일반 월급쟁이로는 못 산다”며 “대출도 싫고 무조건 내 돈으로 집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배달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졸업 전까지 8000만원 정도 목돈도 모았다고 한다. 그는 생활비로 쓴 돈을 제외한 5000만원으로 주식 투자를 하는 중이다. 매일 일어난 후 오후 스포츠센터로 출근하기 전까지 좁은 침대에 누워 경제 뉴스를 보고, 미국 증시를 분석하며 공부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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