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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져도 다시 도전할 수 있게… 국가가 청년 보호망돼야

<5·끝> 위기의 청년 구하려면

게티이미지

“누구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다 같이 끌어주는 세상.”

서울 마포구의 한 게스트하우스를 둥지 삼아 사는 전석범(28)씨가 바라는 10년 뒤 한국 사회는 ‘연대’라는 한 단어로 압축됐다. 그는 하루 1만원이 되지 않는 숙박비로 게스트하우스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연말을 보냈다.

새해 들어 충남 천안 본가로 내려간 전씨는 6일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국제사법 관련 대학원 입학서류를 준비하고, 두꺼운 토익책을 꺼내 영어단어를 외웠다. “올 봄이 되기 전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려고요.” 그의 말끝에선 희망과 불안이 묘하게 교차했다.

장편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종종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이상준(가명·38)씨는 ‘조금씩이라도 희망이 보이는 사회’를 꿈꾼다. 그는 제주도 자택에서 영상 작업에 한창이다. “청년이 국가의 꿈이자 미래라고 하잖아요. 취업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해결해주는 정책이 있으면 좋겠어요.”

국민일보는 지난해 연말 서울의 여러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청년들을 새해 들어 다시 접촉했다. 청년들의 바람은 평범하고 소박했지만, 절실함이 담겨 있었다. 이들은 현재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중하위권’으로 평가했다. 전문가들이 ‘고난의 터널’ ‘고용위기·불평등의 정점’이라고 진단한 청년의 현주소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만큼 발 디딘 현실과 꿈 꾸는 미래의 간극은 컸다. 청년들은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 매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일을 꿈꾸는 청년의 어려움을 국가가 외면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취업 무한 루프

청년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단연 일자리다. 취업준비생으로 버티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니트족(직업도 일할 의지도 없는 무직자)으로 전락한 경우에도 일자리 문제는 ‘무한루프’처럼 청년을 괴롭힌다. 연미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청년사업실장은 “학창시절부터 12년 길게는 20여년을 준비했지만 일자리는 없고, 어렵게 입사해도 열악한 업무환경 속에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게 청년”이라며 “취준생이든 재직 청년이든 고통스럽긴 매한가지”라고 평가했다. 겨우 일자리를 구해도 무한 이직의 굴레 속에 도돌이표처럼 ‘취업’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회 전체 생산성 저하로까지 연결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교육에 대한 투자에 비해 청년이 역량을 발휘할 일자리로 나가질 못해 사회적으로도 큰 낭비”라며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려면 결국 공공부문부터 고용 창출을 시작해 민간부문도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해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한 현금성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연 실장은 “휴대전화 요금 낼 돈,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을 돈이 없는 청년들이 많다”며 “한시적이라도 구직수당 성격의 현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미취업 청년의 금융 부채를 일정 부분 경감하면 구직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금 지원에 대한 경계 목소리도 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막연한 현금 지원은 땜질용이라 ‘기회 구조’를 열어주는 게 먼저”라며 “교육·훈련을 지원하며 노동시장에 유연하게 진입하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정부 청년정책 컨트롤타워인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업이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커리어를 개발하고, 쌓아나가는 데 정부가 도움을 줘야 한다”며 “현재는 이를 사적으로 부담하는 진공상태라 청년끼리도 교육·훈련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청년들의 건강을 살피는 보다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삶이 장시간 이어지면서 몸이 고장 난 청년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상민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 사태 이래로 불면증, 공황장애, 우울증세를 상담하는 청년이 크게 늘고 극단적 선택에 대한 충동을 토로하는 비율도 높아졌다”며 “한 번에 몇 만 원이 드는 진료비 부담을 호소하는 청년도 정말 많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상대적으로 덜 심각한 정신질환이라도 청년에 맞춘 진료비 지원으로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벌어지는 격차

전문가들은 청년이 어떤 세대보다 다층적이라고 분석한다. 수십억원짜리 강남 아파트에 사는 부모를 둔 이부터 지방 고졸 출신까지 청년들의 모습도 여러 갈래로 분화된 사회의 모습을 닮아 있다. 싼 숙박비에 끌려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청년들은 대부분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경우가 많았다. 청년을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 문제를 파악할 경우 문제의 본질을 짚어내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임 교수는 “지방 청년과 수도권 청년을 같은 무게로 바라봐선 안 된다”며 “지역에서 상경한 청년들은 일용직이나 비정규직, 심지어 위험이 외주화된 일터에 내몰리는 경우도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더 아픈 지방 청년, 저숙련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전을 하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국가가 더 취약한 이들의 보호망이 되어주자는 얘기다.

나아가 노동환경 등 근본적인 구조 개선이 동반되지 않으면 숱한 청년 정책을 쏟아내도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연 실장은 “자산 격차나 고착화된 비정규직, 하청 구조 속에서 청년 특화정책이 나와도 땜질식 처방에 머문다. 막 사회에 나온 청년들이 가장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이제는 구조 자체에 대한 고민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청년의 목소리가 직접 정책으로 수렴될 수 있는 통로를 구조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장군 신용일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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