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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악플러를 보았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오랫동안 거칠고 광활한 인터넷 강호를 쏘다니며 기사를 찾아 썼다. 유명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와 해외 사이트까지 기웃거리면서 보통 사람이라면 알지 못할 별의별 일을 겪었다. 언제 어디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정글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 그렇게 산전수전을 치렀으니 악플에 대한 맷집만큼은 돌덩이처럼 강하다고 자신했다. 일부 못된 네티즌의 사이버 공격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견뎌내는 강한 정신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때때로 악플 때문에 힘들고 세상이 무서워졌다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럴 때마다 “악플은 관심입니다. 무플 고통이 훨씬 괴롭다니까요. 악플은 인터넷 생활의 양념이랄까. 견디세요”라거나 “악플에 고통받는 건 삼류다. 악플을 참는 건 이류다. 악플에 웃는 자가 일류다”라는 식의 농담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악플은 별거 아니다’는 생각은 정말 고약한 악플러들을 만난 이후 산산조각이 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를 비방했다며 날 타깃으로 삼았다. 한 번 먹잇감이 되자 악플 공격은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욕설쯤이야 얼마든지 참아주지’ 하며 대응하지 않은 탓일까. 급기야 염산 테러를 운운하며 가족까지 협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들은 저질 욕설을 가득 담은 이메일을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같은 제목으로 복사해 보냈고 페이스북에도 몰려와 갖은 저주를 퍼부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이르자 악플은 큰 상처가 됐다. 인터넷이 무서워지기도 했다. 결국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그렇다. 알고 보니 난 ‘강철 멘털’이 아닌 ‘유리 멘털’의 소유자였고 악플에 고통받는 삼류였다.

그렇다고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못된 이메일을 보내고 페이스북에 악성 댓글을 남긴 네티즌들에게 법적 대응을 각오하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변호사와 함께 고소를 준비하는 도중에 악플러 2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이렇게 큰 잘못인지 몰랐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제출하고 돌아갔다. 한 명은 초등학교 교사를 준비하는 대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대기업 영업사원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건 이들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는 점이었다. 익명의 그늘이 보통 사람을 ‘악플 괴물’로 만들어 버렸구나.

악플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배구 선수 김인혁씨와 여성 인터넷 방송인(BJ)이 얼마 전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김씨는 ‘화장을 한다’는 억측으로 인신공격에 시달렸다. 여성 BJ는 남성 혐오로 의심되는 손동작을 했다는 논란에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이들이 숨진 뒤에도 ‘잘 죽었다’는 끔찍한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악플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현재로선 뾰족한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인성교육을 하자거나 악플을 보지 말자, SNS를 하지 말자는 식의 조언이 있다. 애초에 욕을 먹지 않도록 신중하게 언행을 하라는 충고도 있다. 하지만 가해자들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2019년 가수 설리와 구하라가 악플에 치여 숨지자 ‘설리법’으로 통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나왔지만 큰 기대는 할 수 없다. 개정안이 처리된다고 해도 한국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하루 사용자가 10만명 이상인 서비스 제공업체의 게시판 이용자 ID 공개만 의무화하는 것이어서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프라인 징벌이 어렵다면 온라인 징벌제부터 해보면 어떨까. 인터넷 접속을 막거나 글을 못 쓰게 하는 ‘사이버 징역형’이나 성범죄자를 공개하듯 ‘악플러 알림e’ 등을 도입해도 좋겠다. 그렇게 되면 겉으로는 멀쩡한데 익명에 숨어 타인을 죽을 때까지 저주하는 ‘악플 괴물’은 줄어들지 않을까.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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