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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일 관계, 보상과 사죄 분리시켜 풀자

조용래 한일의원연맹 사무총장


한·일 관계가 중증 복합골절상태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한참이다. 해방 후 77년, 국교 회복 후 57년이지만 양국 관계는 안착은커녕 휘청거리기 일쑤다. 서로를 둘러싼 불씨 주머니가 터질 때마다 그랬지만 이번엔 정도가 사뭇 심하다.

근본 원인은 양국의 인식 격차다. 양국 관계에 대해 한국은 과거에만 초점을 맞춰 비판적 입장을 강조한다. 반면 일본은 과거는 모르쇠고 미래가 중요하다는 입장이 강하다. 과거와 미래가 그렇듯 엇갈리니 양국의 현재는 늘 팍팍할 수밖에.

더 중요한 원인은 양국 모두 서로의 인식 차이에 대한 깊은 통찰이 부재한 데다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한·일 관계에 대한 양국 정부의 관리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양국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도 심심치 않았다.

상호 인식 격차를 전제로 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시작은 한국이었다. 1993년 3월 13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물질적 배상을 요청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일본은 진상을 규명하고 사죄하며 후대에 그 사실을 알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른바 ‘3·13 선언’이다.

이후 ‘3·13 선언’은 일제 강점기 피해자 문제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기본원칙이 됐다. 김영삼정부가 시작한 위안부에 대한 보상과 지원은 김대중정부로 계승·확대됐다. 이어 노무현정부는 징용피해자에 대한 보상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음을 선언하고 보상 대상 확대를 추진했다. 이렇게 지불한 보상액은 이미 8000억원에 이른다.

한편 일본 정부는 ‘3·13 선언’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해 8월 ‘고노 담화’를 발표해 위안부 동원에 옛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했다. 이어 ‘무라야마 담화’(1995)를 통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천명했다. ‘한국 정부의 보상과 일본 정부의 사죄’라는 틀이 작동되면서 양국은 한·일 관계의 지침과도 같은 ‘김대중·오부치 한일신선언’(1998)에 이른다.

‘한일신선언’의 핵심은 한·일 양국이 서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가감 없는 평가와 반성 그리고 미래를 향한 협력을 선포한 데 있다. 한국은 일본의 평화헌법 관철 노력을 평가하고,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와 함께 한국의 산업화·민주화에 경의를 표했다. 나아가 양국은 역내의 평화를 미래의 과제로 선포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한일신선언’은 빛이 바랬다.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이던 일본 정계가 반동의 주장에 휩쓸리기 시작한 탓이 크다. ‘혐한’ 주장이 나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더불어 양국 정부의 한·일 관계 관리 노력도 탄력을 잃어갔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영토 문제가 불거지고, 2015년 위안부 합의와 반발, 2018년 징용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발 등이 이어졌다. 갈등은 역사문제를 넘어 전방위로 퍼졌다.

다행히 오는 10일 새 정부 탄생을 계기로 양국에 해빙의 기운이 보인다. 지난달 말에는 대일 정책협의단이 일본을 방문해 대화를 시작했고, 그간 한국과 대면조차 꺼렸던 일본 정부도 호의적이다. 하지만 앞서 거론한 두 가지 문제, 즉 서로의 인식차에 대한 깊은 이해 부재와 관계 유지를 위한 관리능력 부족의 문제점은 여전하다. 새 정부 관계자들도 관계 개선만을 되뇔 게 아니라 관계의 기본원칙부터 다져야겠다.

해법의 실마리는 양국이 전향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실천했던 90년대의 경험에서 찾아야 한다. 피해자 보상은 한국이 하고 일본은 사죄하는, 즉 ‘보상과 사죄의 분리 원칙’에 입각해 난마처럼 얽힌 양국 현안을 차분히 풀어가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러자면 피해자와 지원단체 그리고 국민을 향한 정부의 진지한 설득이 먼저 있어야 한다.

조용래 한일의원연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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