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말라”… 생수병 물고 온 도우미견 말리 [개st하우스]

장애인도우미견협회 훈련현장
골든두들견, 60종 명령어 알아들어
애견훈련소 접고 소명감에 뛰어든
이형구 협회장의 30년 헌신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6년 경력의 지체장애인 도우미견 말리가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병을 꺼낸 뒤 입에 물고 가져다 주는 훈련을 하고 있다. 말리는 60여 가지 명령어를 알아듣는다.

“말리, 휠체어. 옳지, 잘했어.” “말리야, 냉장고. 물 가져와. 문 닫고. 옳지, 잘했어.”

성인 남성도 버거운 30㎏ 휠체어를 척척 끌고 오고 앞발로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병을 갖다 주는 이 친구는 지체장애인 도우미견 말리입니다. 27㎏ 몸집을 자랑하는 대형견이죠. 6년차 베테랑 도우미견 말리는 신경계 혹은 근골격계 문제로 거동이 제한된 지체장애인을 대신해 다양한 가사노동을 수행합니다. 영리한 골든리트리버와 털 빠짐이 덜한 스탠더드푸들의 장점을 두루 갖춘 견종인 골든두들로 무려 60가지 명령어를 알아듣지요.

도우미견 말리가 4단서랍의 두번째 칸에서 양말을 꺼내고 있다. 아래는 말리가 쓰러진 응급환자를 위해 크게 짖어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

30분간 진행된 훈련에서 말리는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벨이 울리는 휴대전화를 물어오고 4단 서랍의 두 번째 칸에서 양말을 꺼내왔습니다. 2년 경력의 김수민(28) 훈련사는 “말리는 태생적으로 물건을 물고 당기는 것을 좋아해 도우미견 훈련을 놀이처럼 즐긴다”고 설명합니다. 말리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고도의 능력도 갖췄습니다. 곁에 있던 기자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상황을 연출하자, 말리는 힘껏 짖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장애인 보조견’하면 시각장애인 안내견만 떠올리지만 도우미견의 종류는 많습니다. 말리와 같은 지체장애인 도우미견은 물론이고 청각장애인에게 특화된 견공도 있지요.

국민일보는 지난달 14일 경기도 평택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를 방문해 도우미견 훈련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도우미견협회는 안내견과 더불어 청각·지체장애인 도우미견까지 모두 육성하는 국내 유일의 훈련소입니다.

평소에는 반려견, 위기상황선 도우미견

대형견 말리에 이어 등장한 것은 5㎏의 소형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댄디입니다. 댄디는 생후 11개월의 새내기 도우미견으로 소리 자극에 잘 반응합니다. 좋아하는 장난감 공을 ‘삑삑’ 소리 내며 물고 다니는 모습이 평범한 반려견과 다르지 않았죠.

초인종이 울리자 댄디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종소리의 위치를 파악하더니 곧장 훈련사에게 매달려 온몸을 흔들었습니다. 훈련사가 검지를 흔들며 수어로 “어디냐”고 묻자 댄디는 해당 장소로 달려갔습니다. 청각도우미견의 훈련은 ①소리를 인지하고 ②장애인에게 달려간 뒤 ③해당 장소로 데려가기 과정을 한 단계씩 수행하고 보상받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마지막은 안내견 차례입니다. 15㎏ 안내견 소라가 나섰습니다. 훈련에 앞서 소라는 하네스(가슴줄)를 착용했습니다. 하네스는 보행 시 시각장애인이 잡아당겨서 안내견의 속도를 조절하고 출발 신호를 주는 중요한 소통수단이지요.

교육은 주변 행인의 말소리에 안내견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영어로 진행됩니다. 주요 명령어는 “고(가자)” “파인드스텝(계단을 찾아)” “굿 도그(잘했어)” 등입니다.

성인 둘이 걷기에도 좁은 인도에 장애물이 나타났습니다. 훈련사 앞에 이마 높이의 철봉, 구두 높이의 돌부리 등이 나타나자 안내견은 걸음을 멈췄습니다. 계단, 인도의 끝자락 등 높낮이가 변화하는 지형을 앞두고는 몸을 숙이거나 세우며 미리 경고하더군요. 훈련을 담당한 이이삭(38) 사무국장은 “소라는 젖먹이 시절부터 직접 기르고 가르친 아이”라며 “도우미견은 분양 후에도 후속 관리를 위해 입양자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을 이어간다”고 전합니다.

사비 털어 30년째 도우미견 도전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의 이형구 협회장(왼쪽)과 아들 이이삭 사무국장.

도우미견협회를 세운 건 이형구 협회장입니다. 이삭애견훈련소를 경영하며 잘나가던 그는 제자인 이웅종·찬종 형제에게 훈련소를 물려주고 30년째 민간협회를 통해 도우미견 육성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1993년 국내 최초의 안내견 마실이와 나들이를 길러낸 것도 이 협회장입니다.

이 협회장은 “2010년 보건복지부에서 예산 지원을 받기 전까지 17년간 사비를 털어 직원들 월급을 챙겨줬다. 집에 만원 한 장 가져가지 못하는 외로운 시간이었다”면서 “장애인의 복지 향상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개척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에 참고 버텼다”고 말했습니다. 이 협회장에게 국내 도우미견 육성 현황에 관해 물었습니다.

-93년부터 17년간 도우미견을 개인 돈으로 길러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이전에 이삭애견훈련소를 운영하며 번 돈으로 버텼다. 이웅종(현 이삭애견훈련소장)과 이찬종이 내 제자다. 찬종이는 결혼식 때 내가 주례를 섰다. 그 시절 반려견들을 교육한 수익금에 서정대 원광대 평택대 등에 동물매개치료 과목을 개설해 겸임교수로 받은 강의료도 보탰다. 명색이 가장인데 집에 돈 만원도 못 갖다 준 적이 많았다. 나는 못 가져가도 직원들 급여는 줘야 하니까. 외롭고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돈 되는 사업이 아니어서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었다. 당시 청각장애 부모들은 자식이 아파서 울어도 알아챌 방법이 없으니 매일 밤 자식을 껴안고 자거나 함께 손목을 묶고 자야 했다. 도우미견의 존재는 장애인 삶의 질을 놀랍도록 개선할 수 있다.”

-국내 도우미견 보급 현황은.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장애를 갖게 된 참전용사 복지 차원에서 도우미견이 보급됐다. 미국에는 80여곳, 일본에는 30여곳의 육성기관이 운영 중이다. 수천 명의 후원자와 봉사자가 함께하며 매년 100마리씩 도우미견을 육성하는 대형단체도 있다. 반면 국내에는 장애인 도우미견을 육성하는 기관이 두 곳뿐이다. 도우미견협회와 기업 후원을 받는 삼성화재안내견학교다. 우리는 총 6명의 직원이 40마리의 예비 도우미견을 육성한다. 현재 규모로는 연간 20마리 정도만 길러낼 수 있다. 2년째 입양 순서를 기다리는 분도 있다.”

-제도적 지원은 충분한지.

“솔직히 운영비가 부족해 허덕이고 있다. 계속 지원을 호소해서 보건복지부와 경기도로부터 매년 2억여원을 지원받지만, 6명의 인건비와 도우미견 40마리의 사료비를 감당하기도 버겁다. 지금의 처우로는 나가겠다는 직원을 붙잡을 수 없다. 장애인복지법 25조의 10을 보면 도우미견 훈련기관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여전히 어렵지만 언젠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버틴다.”

-도우미견은 거듭된 희생으로 오래 살지 못한다는 우려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괴로워하거나 싫어한다면 훈련을 오래 반복할 수 없다. 도우미견이 소리에 반응하거나 물건을 가져오는 일을 즐기지 않는다면 반복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도 도우미견이 일반 반려견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 도우미견은 24시간 일하는 게 아니라 24시간 보호자와 노는 것일 수 있다. 낮에 홀로 집을 지키다 늦게 퇴근한 주인을 맞이하는 반려견과 종일 보호자와 함께하는 도우미견 가운데 누가 더 행복할까.”

평택=글·사진 이성훈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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