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가 묻혀 있다는 산 아라라트… 곳곳에 탐사 유적지

[노아의 방주 표착지 터키 아라라트산을 가다] <하> 성스러운 땅에 묻힌 방주의 흔적을 찾아서

터키 아리주 도우바야지트시 노아스빌리지 내 모형 ‘노아의 방주’ 뒤로 아라라트산이 보인다. 임보혁 기자

해발 5137m의 터키 동부 아리주 아라라트산 주변엔 4300여년 전, 대홍수 끝에 표류하다 도착한 노아의 방주가 묻혀 있다고 알려진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아라라트산 4900여m 부근이고, 다른 하나는 그곳에서 20여㎞ 떨어진 일명 ‘두루피나르 유적지’다. 국민일보는 엑소아크선교회 이사장 김승학 장로, 윤사무엘 겟세마네신학교 총장과 오선화 사모, 이은주 순천 소망교회 목사, 양시열 성도 등과 함께 지난 7일과 8일(현지시간) 두 곳을 각각 찾았다.

한때 가장 유명했던 두루피나르 유적지는 예상과는 달리 차를 타고 평지를 벗어난 지 15분여 만에 닿았다. 멀리 높은 돌산으로 둘러싸인 너른 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뒤집힌 배의 밑 십자 중심축 모양이었다. 방주라고 의심할 법했다. 하지만 이 지형을 직접 올라 밟아볼 수 있을 정도로 누구 하나 제재하는 이가 없자 의구심은 이내 확신으로 변했다. 배의 뼈대가 됐을 법한 목조 구조물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흙으로 덮인 동산에 불과했다.

8일(현지시간) 아라라트산 2200m 지점에 있는 제단 같은 오각형 돌담. 임보혁 기자


다음 날은 2010년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대형 목조 구조물이 발견됐다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라라트산으로 향했다. 가장 최근까지도 노아의 방주가 있을 것이 유력하다고 여겨지는 곳이다. 차량으로 해발 2200여m까지 오를 수 있었다. 올라갈수록 거센 바람과 함께 거대한 산이 주는 위용에 압도됐다. 잠잠해진 바람을 느끼며 옆을 보니 대각선 길이 20여m쯤 되는 오각형 모양으로 쌓인 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방주에서 내려 산 중턱까지 온 노아가 가족들과 하나님께 첫 감사예배를 드렸을 법한 제단 같았다. 노아의 심정을 한층 더 알고자 산을 더 오르고 싶었지만, 약 3㎞ 정도 떨어진 노아의 방주 추정 터는 안타깝게도 안전 상의 이유로 현재로선 터키 정부의 허가 없이는 오를 수 없었다.

아쉬움은 산에서 내려온 뒤 만난 네덜란드인 욘 모엔(75)씨로부터 덜 수 있었다. 그는 아흐메트 파라수트 에투룰씨를 따라 2015년 7월 1일 실제로 노아의 방주에 들어갔다고 했다. 이 지역 산악인 에투룰씨는 1983년 처음 방주를 발견했지만 홀로 비밀로 간직하다 2010년 탐사대와 함께 이를 세상에 공개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모엔씨가 보여준 영상에는 한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겨우 다닐 만한 좁은 통로가 얼음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통로 위로는 서까래 같은 나무 구조물이 드러나 있었다. 모엔씨는 “당시 이틀에 걸쳐 방주를 탐방하고 돌아왔다”며 “에투룰씨를 따라 방주가 있다는 곳에서 좁은 틈을 통해 5m 내려가자 길이 40m 정도의 나무 구조물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가 회상한 당시 방주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은 커다란 나선형 구조물이었다. 그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했다.

이날 산을 함께 올랐던 일행에게 노아의 방주와 아라라트산이 지금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물었다. 윤 총장은 “노아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우리가 당시 의인이었던 노아처럼 의로운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길 바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김 장로도 “수많은 세월과 전쟁을 거쳐 지금 시대에 와서야 우리에게 노아의 방주를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그 뜻을 찾고자 조만간 노아의 방주 탐사에도 나서려 한다. 한국교회의 뜻있는 분들이 함께해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노아의 방주는

홍콩 노아방주선교회 탐사대가 2010년 아라라트산에서 노아의 방주가 발견됐다며 공개한 영상으로 탐사대가 방주 속에 있던 병아리콩 화석을 채집하고 있다. 영상 캡처

성경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는 무동력선이다. 내구성이 강한 고페르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역청으로 안팎을 칠해 방수 처리했다. 방주는 120년 동안 건조됐다. 방주의 크기와 상징성만큼 논란도 많이 겪었다. 나무로 된 방주가 대홍수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으며 방주에 머물렀던 각기 다른 동식물종이 긴 시간(1년 17일)을 어떻게 버텼을 것이냐는 의문은 남아 있다.

아라라트산 주변 작은 도시들도 수십 년간 방주의 실제 위치를 두고 불거진 전 세계적인 논란을 그대로 지켜봤다. 두루피나르 유적지는 1948년 세 번의 지진 발생 이후 양치기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거대한 배가 뒤집힌 모양을 닮은 지형 탓에 59년과 78년 잇따라 이곳에 실제로 노아의 방주가 묻혔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수차례에 걸친 조사 결과 자연 지형으로 드러났다. 이후 논란은 아라라트산으로 옮겨졌다. 홍콩 노아방주선교회를 필두로 꾸려진 탐험대는 2009년 9월 아라라트산의 해발 4000여m 지점에서 고대 목조 구조물을 발견했다고 2010년 발표했다.

도우바야지트(터키)=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