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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카톡 종교’에서 벗어나려면

우성규 종교부 차장


주일학교(Sunday School)는 영국의 언론인 로버트 레이크스(1736~1811)가 시작했다. 산업혁명이 불붙던 18세기 영국의 가난한 집 어린이들은 공장이나 탄광에서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주일엔 쉴 수 있었으나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싸움을 일삼고 술·담배를 배우기도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언론인 레이크스는 1780년 영국 글로스터의 가정집 주방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철자법부터 시작해 문자를 해독하는 게 첫째 목적이었다. 읽을 줄 알아야 성서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일학교 이야기가 ‘글로스터 저널’에 기사로 보도되자 사려 깊은 영국 귀족들이 후원으로 동참했다. 감리교를 이끈 존 웨슬리는 소외된 어린이를 돕는 주일학교 봉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교회 부흥 운동의 기초로 삼았다. 영국 학교교육의 시작은 교회의 주일학교 운동에서 비롯했다.

그때는 교회의 문맹 타파가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교회의 문해력 끌어올리기가 절실하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소리 내 읽는 것을 넘어 글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한국교회의 많은 주일학교가 2년 넘게 모이지 못했는데, 그 틈에 다음세대의 문해력은 더 떨어졌다. 부부가 맞벌이로 내몰리는 어려운 가정일수록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켜서 쥐여 주고 여가를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밥벌이에 지쳐 책을 들 힘조차 없기 때문이다. 글을 읽어도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다시 말해 문해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세대들이 등장하고 있다. 성경을 읽긴 하지만 이를 이해하고 자기 삶에서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을 교회 공동체가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다는 의미다.

과도한 미디어의 노출은 사실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는다. 코로나 ‘집콕’ 시대를 거치며 넷플릭스 중독이 심해져 밤새 보든 안 보든 틀어놓고 지낸다는 이들도 생겨났다. 월정액이 아깝기 때문이다. ‘카톡 종교인’은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온종일 유튜브 가짜뉴스를 퍼 나르는 일부 극단적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합리적 의심과 충분한 검증 없이 다수가 모인 공간에 마구잡이로 링크를 퍼트리는 건 반(反)지성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독서가 필요하다. 기독교는 본래 성경이란 책을 읽고 함께 대화하며 은혜를 나누는 종교다. 성경과 더불어 신앙의 깊이를 더하는 책을 읽어야 목회자들의 설교도 더 잘 들을 수 있다. 듣는 귀를 만드는 것 역시 독서의 기능이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을 더 잘 듣는 사람으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책 읽는 그리스도인 모임을 조직해야 한다. 평신도로서 10년 넘게 독서 모임을 이끌며 ‘읽기:록’(지우)을 저술한 서자선 서울 광현교회 집사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카톡으로 가짜뉴스를 퍼 나르는 교인들을 교회 공동체가 내버려 두는 건 사실상 직무유기”라며 “책 읽는 그리스도인 모임을 통해 미디어에 대한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가 사귐과섬김 부설 코디연구소와 함께 실시한 한국교회 신뢰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34%는 기독교인의 배타적 독선적 언행 자제를 주문했다. 교회 안의 리그에 갇혀 사고하고 정답에 익숙하며 그걸 사회에서 표현하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가서 발언하니 곧바로 배타적이란 평가가 따라오는 것이다. 교회 밖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잘 해석하려면 역시 독서와 더불어 신문 읽기가 필요하다. 신앙 서적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읽기가 필요하기에 20세기 대표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한 손에 성경, 다른 손에 신문’을 외쳤다. 교회와 사회에 대한 몽글몽글한 이해가 우리를 공감과 소통의 장으로 이끌 것이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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