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양구 (7) 책·영화로 좋은 기억 있던 러시아… 가장 많은 인연 맺어

의전과 어학연수에서 선택한 러시아어
당시 비수교국이라 미국서 원어민 수업
한·소 정상회담 공식 의전으로 첫 임무

이양구(오른쪽) 우크라이나 전 대사는 1993년 주러시아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간 모스크바에서 주말이면 직원들과 함께 분위기 활성화를 위해 크로스컨트리를 했다.

외교관 생활을 하며 가장 많은 인연을 맺은 나라는 러시아다. 의전과에 있던 중 1989년 어학연수를 가게 됐다. 동기 20명 중 절반은 영어권, 나머지는 비영어권 국가로 가게 돼 있었다. 토플 성적순으로 언어권을 선택할 수 있는데 군 제대 1년밖에 되지 않으니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언어가 러시아어였다.

당시는 소비에트 연방체제가 붕괴되기 전이지만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됐다. 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만나지 못한 미국 등 서방 국가와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이 88서울올림픽에서 만난 직후였다. 한·소 수교 움직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러시아의 기억이 좋았다. 청소년기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 작가의 책을 읽었다. 서울 중앙극장에서 본 영화 ‘닥터 지바고’는 기억에 남는 영화 중 하나였다. 놀랍게도 우리나라가 소련과 수교 돼 있지 않아 러시아어는 미국에서 배웠다.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의 국방외국어대학교에선 전 세계 언어를 원어민에게 배울 수 있었다.

91년까지 러시아어를 배우는 와중에 역사적 장소에 불려가기도 했다. 언론은 90년 12월 13일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한 노태우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대통령의 첫 소련 공식 방문'이라고 기록했다. 나는 의전을 위해 미리 모스크바로 향했다. 6개월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한·소 정상회담에 참여한 데 이은 것이다.

겨울이 없는 미국 서부에 있다가 갔던 모스크바에서 눈에 들어온 건 자작나무와 눈 덮인 공항이었다. 낯선 풍경인데도 포근함을 느꼈다.

나는 차량 담당이었다. 수십 대 차를 움직여야 했고 운전기사도 관리했다. 도로는 돌발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만큼 무전기를 들고 철저히 준비했다. 운전기사에겐 맥도날드 햄버거를 사주며 교제했다. 맥도날드는 그해 1월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1호점 문을 열었다. 한 달 새 러시아와 러시아 사람들에게 정이 들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모스크바 꿈을 꿀 정도였다.

3년 6개월이 지난 93년, 주러시아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러시아 모스크바를 다시 찾았다. 2년 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됐지만 러시아 정국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때로는 정부군이 국회의사당 내 공산당 저항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발포할 정도였다.

군대와 의전과를 거치며 위기관리를 배웠고 이를 러시아에서 활용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외교관 생활은 쉽지 않았다. 외교는 협상인데 똑같은 말도 다르게 해석했다. 오리발을 내밀기도 했다. 합의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협상에 나선 사람이 책임을 뒤집어써야 했다. 외교부 직원들 사이에서 러시아는 아무리 잘해도 50점밖에 안 되는 나라였다.

그나마 수습이 되는 위기라면 다행인데 그게 안 되면 책임은 컸다. 러시아 대사 출신 외교부 장관이 3명이나 탄생했지만 반대로 러시아로 인해 물러난 외교부 장관도 3명이나 됐다. 러시아가 외교부 인사권자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왔다.

어려움 속에서 힘이 된 건 러시아에 오면서 시작한 큐티(말씀묵상)와 진심을 좋아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따뜻함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러시아에 대한 애정이 많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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