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만원 세탁기, 200만원까지 올랐는데… 물가는 떨어졌다?

체감물가와 통계청 물가의 괴리


‘장보기 무섭다’는 말이 연일 튀어나오는 물가 상승세다. 금추(금+배추), 금사과, 금달걀, 금파 등 식료품 가격이 급등한 품목 앞에 ‘금’을 붙이는 일도 예사다.

통계청에서는 4%대의 물가 상승률을 발표하지만 소비자는 그 이상으로 물가가 상승했다고 느낀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와 통계청이 내놓는 물가 상승률에는 왜 이런 괴리감이 느껴질까.

자주 사는 품목 상승 더 크게 느껴

2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의 물가지수를 분석한 결과 2001년 이후 20년간 물가는 56.0% 상승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상승은 그보다 훨씬 큰 농산물(115.2%)의 상승률 그 이상이다.

집계된 수치보다 소비자가 물가 상승 폭을 더 크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품목마다 구매 빈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농산물 가격이 2배 이상 오르는 동안 내구재는 7.3%만 상승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가전, 가구 등의 내구재보다 농산물을 자주 구매한다.

20년간 가격이 크게 상승한 식료품은 소비자가 거의 매일 구매하는 품목이다. 반면 가전, 가구 등 내구재를 매일 구매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결국 매일 구매하며 가격을 확인하는 식료품 가격의 인상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셈이다.

하지만 물가지수 가중치는 쌀과 TV가 동일하게 2.7, 우유와 컴퓨터가 동일하게 4.1로 돼 있다. 물가지수 가중치란 1000을 기준으로 해서 각 품목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가중치로만 보면 물가 상승률을 산출할 때 쌀과 TV가 비슷한 수준으로 반영이 되는 셈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전, 가구 등은 매일 구매하는 게 아니라 특정 시점에만 구매하기 때문에 가격 상승이나 하락을 체감하기 어렵다”며 “필수적이고 지속적으로 구매하는 식료품의 가격 변화가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기술 발전의 착시 효과

실제 가격은 올랐지만 물가 측정 과정에서 품질 향상분이 반영돼 가격이 하락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도 있다. 품목별 물가지수를 보면 TV(-90.1%), 휴대전화기(-87.5%), 컴퓨터(-74.2%) 등 가전제품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대부분 20년간 기술 혁신이 이뤄진 품목이다. 통계청은 판매가격뿐 아니라 품질도 수치화해 물가지수 계산에 포함한다. 기술 발전에 따른 품질 향상을 반영하기 위한 방법이다. 과거 판매되던 흑백 폴더 휴대전화와 현재의 스마트폰을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기의 품목 물가를 계산할 때는 2001년 판매된 제품과 2021년 판매된 제품의 판매가를 단순 비교하지 않는다. 대신 와이파이, 5G 등 새롭게 등장한 기술을 가격으로 치환해 가격에서 제거한다. 더 새롭고 신선한 기술이 많이 등장한 품목일수록 가격 제거분이 커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기술 혁신에 따른 품질 향상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가전제품의 경우 가격이 낮아진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통계청 관계자는 “가격 자체가 저렴해지지 않아도 품질 상승분이 물가에 반영되면서 물가가 낮아진 효과가 발생한다”며 “가전제품은 특히 기술 발전이 빠르므로 품질 향상분이 크게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증가했다. LG전자가 2001년 출시한 드럼세탁기는 120만원대에 판매됐다. 현재 비슷한 사양의 제품은 200만원 선까지 올랐다. 휴대전화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2001년 출시한 국내 최초 블루투스 스마트폰은 70만원대였다. 반면 지난해 출시된 스마트폰 갤럭시 S21의 출고가는 99만9000원이었다. 기술 혁신이 물가지수 하락에 영향을 주지만 실질적으로 소비자가 가격 하락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과거보다 다양해진 품목도 물가가 하락한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낳는다. 과거 가전제품이 대부분 고가였다면 이제는 중저가 제품부터 고가 제품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이 출시된다. 평균값을 냈을 때 가격이 하락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전기료 더디게 오른 영향도

일부 공공서비스 요금도 물가지수를 낮추는 효과를 냈다. 유선전화료(-5.5%), 휴대전화료(-29.0%), 인터넷이용료(-3.1%) 등의 가격이 하락해 공공서비스 요금은 20년간 25.4%만 상승했다. 도시가스요금도 20년간 25.2%만 상승하는 등 총물가지수 상승률을 밑돌았다.

전기료는 오히려 20년간 10.6% 하락했다. 원유, 석탄 등 에너지 원료 가격이 상승한 점을 고려하면 전기료 하락은 이례적이다. 저렴한 전기료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착시효과가 아니다. 한국전력공사가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한 적자를 모두 부채로 끌어안으면서 전기료 인상을 막은 결과다. 한전의 지난해 부채는 145조7970억원이었다. 지난 1분기에도 7조7869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체감 물가에는 전기요금 인상 여부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한 요금 동결과 한전 적자 해소를 위한 요금 인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탈원전 등 정치 논리 개입으로 인해 전기료 인상이 어려워졌다”며 “국제 에너지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에 전기료도 당연히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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