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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방치한 것” 젖먹이 딸 학대치사 엄마, 석방되다

항소심서 뒤집힌 ‘영아 사망’
징역형 집유… “피고인만 비난 부당”


지난 17일 오후 대전고법 법정. 피고인석의 21살 여성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재판장이 양형 이유를 읽는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산후우울증 증세를 보이다 젖먹이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아동학대치사)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1년째 수감 생활을 해왔다.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3월 말 집에서 생후 1개월 된 딸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뒤통수를 한 차례 때리고 심하게 흔들다 침대 위로 떨어뜨렸다. 머리를 다친 아이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며칠 뒤 숨졌다. 1심은 “반인륜적 범죄로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 5년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인 대전고법 형사3부도 A씨가 지탄받아 마땅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판단에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재판부는 징역 5년이 나왔던 A씨의 형량을 ‘작량감경’(법관의 재량에 따라 형을 줄여준다는 뜻)을 통해 2년6개월로 줄인 뒤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석방 결정을 했다. 이례적인 판결이다.

재판부가 이 같은 결론을 내린 배경엔 A씨의 성장 환경 등 범행에 이른 일련의 과정이 놓여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A씨는 고교 2학년 때 자퇴했다. 이후 아르바이트로 가족 생계를 돕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19살이던 2020년 6월엔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주변의 만류에도 그는 임신 사실에 감사하며 아이를 낳았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됐지만 산후조리원은 물론이고, 양가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남편은 택배 물류센터에서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주6일 일했다.

육아는 오롯이 A씨 몫이었다. 10㎡(3평) 남짓한 원룸에서 온종일 아이를 돌봤다. 코로나19 탓에 외출도 어려웠다. 아이가 울어도 달랠 방법을 몰랐다. 아기 울음 소리에 이웃 민원이 계속되면서 산후우울증도 악화됐다. 재판부는 “A씨가 극심한 산후우울증에 빠졌고 치료받지 못한 채 혼자 아이를 돌보던 중 이성을 잃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모성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제36조 2항을 인용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A씨처럼 혼인했으나 형편이 어려운 임산부를 지원하는 데 매우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홀로 육아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저지른 범행의 결과를 놓고 피고인만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재판부는 제도적 미비점을 확인하기 위해 여성가족부에 사실조회도 신청했다.

재판장인 정재오 부장판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사건은 전형적 아동학대치사 사건이 아니라 임신과 출산에 따른 여성들의 고통을 사회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A씨 측 김은진 변호사는 “출산과 육아를 보호하고 장려해야 할 국가가 복지정책의 미비로 열악한 환경에 놓인 엄마 한 사람에게 감내하기 어려운 짐을 지우는 상황을 성찰하자는 의미가 판결에 담겼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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