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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문·의열사기… 조선시대 ‘궁중현판’ 나들이

국립고궁 박물관, 첫 단독 특별전
8월15일까지… 총 3부 80여점 선봬

조선 시대 궁중에 내걸렸던 다양한 현판. 사진은 개국공신 정도전이 근정전 서쪽 행각에 내걸게 했던 ‘융무루(隆武樓)’.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궁중 현판 80여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이 오는 8월 15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하는 ‘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 특별전을 통해서다. 개별 전시에 몇 점씩 나온 적은 있지만 조선시대 서예사와 유교적 이상사회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현판만으로 전시를 꾸민 것은 처음이다.

궁궐 현판은 일제강점기에 궁이 동물원 식물원 등으로 용도 변경되면서 훼철되고 제자리에서 떼어졌다. 수장고에 갇혀 유물이 된 현판들이 한꺼번에 꺼내져 전시를 통해서나마 ‘현판의 나라 조선’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시는 프롤로그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훼손된 궁중 현판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기까지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곳에 소장 중인 가장 큰 현판(124×374㎝)인 ‘대안문’(大安門)이 도입부를 장식한다. 경운궁(현 덕수궁)의 정문에 걸렸던 것으로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크게 편안하기(大安)를 바랐던 당시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검은 바탕에 금박으로 숙종의 글씨를 새긴 ‘가애죽림(可愛竹林)’ 현판.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1부 ‘만들다’에서는 현판의 글씨와 재료, 제작기법 등을 소개한다. 테두리가 있고 봉황무늬가 새겨진 것, 색으로는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씨가 쓰인 것이 가장 위계가 높다는 사실 등 현판 관련 궁금한 점을 친절히 알려준다. 조선 숙종이 쓴 ‘가애죽림’(可愛竹林) 현판이 왕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어필 현판이다. 가애죽림은 ‘사랑할 만한 대나무 숲’이라는 뜻으로 1692년(숙종18) 영화당 중수 후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제(왕의 글씨)를 새긴 현판은 여닫이문을 닫거나 천을 씌워 귀한 신분의 글씨임을 표시했다. 영조가 망묘루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 심정을 기록한 현판에 여닫이문이 달렸다. 영조는 조선 왕 가운데 가장 많은 어필 현판을 남겼는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현판 775점 중 85점이 영조의 글씨를 새긴 것이다.

영조의 위엄을 드높이려고 여닫이문을 단 현판.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현판으로 당대 명필 한호가 쓴 ‘의열사기’(義烈祠記)도 놓쳐선 안 된다. 백제 의자왕 때와 고려 공민왕 때 충신을 모신 사당인 의열사의 내력을 새긴 것으로 1582년 제작됐다.

2부 ‘담다’는 왕도 정치의 이념이 드러난 현판을 네 개 주제로 나눠 조명한다.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이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의 동서행각에 각각 문인과 무인에게 글씨를 쓰게 해 내걸었던 ‘융문루’(隆文樓)와 ‘융무루’(隆武樓)에서 조선 초기 욱일승천의 기세가 느껴진다. 성군이 되고자 하는 왕과 세자의 모습, 백성을 교화하려는 노력, 왕권과 신권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려 한 왕의 노력도 현판의 문장을 통해 느낄 수 있다.

3부 ‘걸다’에선 왕이 신하에게 내린 지침, 관청의 업무 정보와 규칙, 소속 관리 명단 등 게시판이나 공문서 같은 기능을 한 현판, 생각과 감정을 담은 개인적 기록으로서 현판 등 다양한 기능을 보여주기 위해 한 벽면에 현판을 가득 걸었다. 19세기 프랑스 살롱전에서 그림을 전시한 방식을 연상시키는 스펙터클한 연출이 돋보인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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