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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예이츠의 시

태원준 논설위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어려서부터 말더듬이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연설 원고에는 더듬지 않기 위해 띄어 읽어야 할 구절마다 슬래시(/) 표시가 빼곡하게 채워진다. 지난 대선 때는 CNN에 출연해 영국 조지 6세의 말더듬이 극복기를 다룬 영화 ‘킹스 스피치’를 언급하며 자신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조지 6세와 달리 그는 거울 앞에서 혼자 말하는 연습을 했다. 서두르지 않는 습관을 들이려고 주로 시를 읽었는데, 거울을 보며 수없이 암송한 것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를 비롯한 아일랜드 시인들의 작품이었다.

바이든은 케네디 가문처럼 19세기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인의 후손이다. 이 혈통을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지난 3월 아일랜드 성직자를 기리는 성 패트릭의 날, 백악관에서 파티를 열어 이렇게 연설했다. “아일랜드의 위대한 음악가 보노는 말했습니다. ‘미국은 국가라기보다 하나의 아이디어다.’ 그 아이디어는 지난 두 세기 동안 아이리시들이 보듬어 가꿔온 것입니다.” 말더듬이 덕에 시를 외웠고, 혈통 때문에 아일랜드 시를 즐겼던 그는 연설에 시구를 많이 인용하는 정치인이 됐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셰이머스 히니의 ‘트로이의 해법’ 중 한 구절이 자주 등장한다. ‘오래 기다린 정의의 파도가 일어나고/ 희망과 역사가 운율을 맞춘다.’ 자신의 50년 정치 인생을 들며 “이제 ‘역사’인 내게 ‘희망’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바이든과의 첫 통화에서 히니의 이 시구를 읊으며 친밀감을 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예이츠의 ‘인간의 영광’을 건배사에 썼다. ‘인간의 영광이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생각해보라/ 나의 영광은 훌륭한 친구들을/ 가진 데 있었다.’ 몇 해 전 버락 오바마가 바이든에게 자유 메달을 수여하며 읊은 구절이었다. 동반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 시처럼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는 한층 밀착했다. 문제는 그것이 부를 중국의 반발인데, 시진핑에게 들려줄 적당한 한시(漢詩)도 미리 찾아둬야 하지 싶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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