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특파원 코너] 한국이 챙겨야 할 대가

전웅빈 워싱턴특파원


미국에서 만난 한반도 전문가들은 종종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에 실망감을 표했다. 중국과 북한을 지척에 두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언급하면 미국도 중국과의 대결로 가격 상승 등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과의 대결은 피할 수 없고, 감내해야 할 일이라는 확고한 인식이 그들을 지배하는 듯했다. 지난 정부에서 한·미 간 엇박자 지적은 대체로 이런 문제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상황이 바뀌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는 말을 했는데,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기로 한 마음을 절대 바꾸지 말라는 채근처럼 들렸다.

아시아 순방 기간 공급망 재편이 왜 미국 경제와 인플레이션 해소에 도움이 되는지를 자국 기자들에게 여러 차례 설명하던 모습도 인상 깊었다. 바이든 대통령뿐만 아니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이 모두 이런 설명을 반복했다. 사실 바이든 대통령 순방에서 여러 외교적 수사를 들어내면 중국 견제와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의도가 명확해진다.

러몬도 장관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 설명 기자회견 때 더 직접적인 속내를 드러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도·태평양 지역의 (공급망) 병목 현상과 투명성 부족이 미국 경제 전반에 파급을 일으켜 근로자에게 피해를 주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 그는 말레이시아의 반도체 패키징 공정이 코로나19로 폐쇄되면서 그 파급 효과로 미시간주의 자동차 제조공장 근로자 수천명이 실직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더 많은 데이터 공유와 조기 경보 시스템, 투명성, 의사소통이 있었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번 구상은 지난해 10월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처음 개념이 등장했다. 당시 미국은 칩을 구하지 못해 자동차를 못 만드는 수모를 겪었는데, 이를 해소하려고 삼성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공급망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영향력을 견제할 수단이 필요했던 것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국의 경제 문제를 해결할 목적도 컸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과 참모들은 IPEF가 미국 기업과 근로자에게 유익이 되는 전략이라는 설명도 줄기차게 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IPEF는 미국 노동자를 중심에 두고 설계했다. 궁극적으로 미국 노동자와 가족에게 혜택을 줄 개방적이고 투명한 경제 거버넌스에 대한 표준 접근 방식”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익을 위한 교역의 틀과 질서를 만드는 것이 IPEF 목적인 셈이다.

IPEF는 믿을 만한 국가들끼리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해 협력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개념을 기초로 한다. ‘우리끼리 공급망’이다. 미국은 IPEF 참여국에 “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대안을 점점 더 찾기 시작하고, IPEF 소속 국가들은 미국 기업에 더욱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유인했다. 우리끼리 공급망에 들어오면 신뢰가 커져 기업 투자도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신 못 믿을 국가인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대폭 낮추자는 속내도 담겼다. 외교적 수사와 달리 미국 내부를 향한 설명에는 이처럼 철저한 자국 이익 중심의 교역 체제 구축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거의 모든 부분 생각이 일치한다”며 IPEF에 가입했다. 하지만 국익은 서로 충돌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 본격 시작되는 룰 세팅에서 국익 중심의 협상 기조가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전웅빈 워싱턴특파원 imu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