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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방침이라며 사표 요구” 블랙리스트 수사, 靑 정조준

檢, 기관장 사직 정황 참고인 조사

사진=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2017~2018년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장들을 최근 다시 소환해 사퇴 종용 정황을 면밀히 확인하고 있다. 전직 공공기관장들이 사직 과정에서 받은 압박의 양상과 강도엔 차이가 있지만 고위 관료를 통한 사표 제출 요구에 심리적 부담을 가졌다는 점은 공통으로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선 유죄가 확정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와 판결에 비춰볼 때 이번 수사의 종착점이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 사장에서 중도 사임한 A씨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 방침이라는 말과 함께 사표를 요구받았다”고 말했다. A씨는 2017년 9월 일괄 사직한 발전 자회사 사장 4명 가운데 1명이다. 박모 산업부 국장이 당시 서울 광화문 한 호텔에서 4명과 만나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며 “정부 입장이, 정부 방침이 그렇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박 국장이) 사표를 언제까지 내야 할지 시점도 지목했었다”고 전했다.

검찰은 2018년 5월 일괄 사표를 낸 다른 산업부 공공기관장들도 최근 참고인으로 불러 당시 정황을 확인했다. 일부 전직 기관장은 “사표 종용이 아닌 내 뜻”이란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한 전직 사장 B씨는 “새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완전히 바꾸니까 재신임 차원에서 사표를 냈고, (재신임 되지 않아) 수리됐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수사는 이들의 사직이 인사 관련 법령 및 개별 기관 정관 등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규명하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 검찰은 지난 19일까지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들을 압수수색해 임원 선임과 관련한 기관별 정관 등을 확보하고 분석 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 출범에 따라 관행적으로 사표를 낸 것이란 반박 논리를 깨기 위한 근거를 다지는 단계로 풀이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도 산하 기관장에 대한 사표 종용이 법이 정한 절차를 벗어났다는 점이 유죄 근거로 작용했다. 직무수행 능력 평가 등을 거치지 않고 관행이란 명분 하에 사직을 요구한 행위는 부처 장관의 적법한 직무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이 사법부 판단이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공공기관운영법 등 시행 이후 이같이 계획적이고 대대적인 사표 징구 관행은 찾아볼 수 없다”며 “설령 이전 정부에서 있었다 해도 이는 타파돼야 할 불법적 관행이지 정당화 사유로 고려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수사는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한 사실관계를 다진 뒤 청와대 개입 여부를 밝히는 수순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검찰 관계자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제대로 수사되지 못한 청와대 인사수석실 등의 조사가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의 탈원전 정책과 맞물려 진행된 산하기관 인사가 전적으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재량 아래 진행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양민철 이형민 조민아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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