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개 글로벌 기업 러 철수… 명품 떠난 자리 짝퉁이 대신

구소련 개방 상징 맥도날드 철수
스타벅스·이케아 등 줄줄이 떠나

맥도날드 ‘바냐아저씨’로 재탄생
코카콜라 떠나자 ‘쿨 콜라’가 메꿔

러시아 모스크바 시민들이 지난 3월 9일(현지시간) 맥도날드 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다. 맥도날드는 전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에 있던 1000여개 글로벌 기업이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해 고립무원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서방의 제재와 글로벌 기업의 철수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미 많은 기업이 러시아를 떠났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맥도날드다. 1990년 1월 모스크바 시내 푸시킨 광장에 1호점을 열었던 맥도날드는 냉전 종식과 구소련 개방정책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32년 만에 철수했다. 크리스 켐프친스키 맥도날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16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도주의 위기를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32년 전 우리를 러시아 시장 진출로 이끌었던 희망과 장래성을 상징하는 ‘황금 아치’를 상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맥도날드의 상징인 ‘M’은 황금 아치를 뜻하는 조형물이다. 850개에 달하는 매장 철수 지시로 인해 생긴 손실액은 12억 달러(약 1조5000억)에서 14억 달러(약 1조7000억)에 달할 것이라고 CNBC는 전했다.

맥도널드의 영업 중단 소식이 전해지자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인 코카콜라, 펩시, 스타벅스 등도 결국 이날 사업 중단하고 떠났다. 라몬 라구아르타 펩시코 CEO는 “러시아에서 펩시콜라와 세븐업 등 음료 브랜드 판매를 중단한다”고 말하고 현지에서의 어떠한 투자나 광고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큰 타격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 가동을 멈췄다.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 항공기 제조사 보잉은 지난 3월 1일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볼보와 GM도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CNN 비즈니스에 따르면 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도 이달 16일 성명을 통해 르노가 보유한 러시아 자동차 회사 ‘아프토바스’의 지분 68%를 러시아 국영 자동차개발연구소에 매각했다. 또 모스크바 내 자동차 공장 ‘르노 로시야’(르노 러시아)의 지분 100%를 모스크바시에 팔았다.

제조업만 러시아에서 떠난 것은 아니다. 테크 기업들도 러시아에서 발 빠르게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인 넷플릭스도 러시아에서 서비스를 중단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은 러시아에서 게재되는 선전성 게시물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러시아 내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러시아에서 판매를 중단했으며, 자사 결제 서비스인 애플페이 지원을 중단했다. 또 하드웨어 장비 기업 델은 러시아 현지 사업을 중단하고 러시아 협력사에 VM웨어 기술 지원 서비스 제공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모스크바 중재 법원이 델의 자산 1100만 달러(140억원)을 지난 3월 1일 압수당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철수를 앞둔 이케아에서 물건을 구입한 뒤 계산을 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장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있던 1000여개 글로벌 기업이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했다. AP연합뉴스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제프리 소넨펠드 교수팀에 따르면 이달 16일 기준 1000여개의 글로벌 기업이 러시아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 철수하는 등의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들의 현지 자회사 매각이 단기간에 이뤄지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는 러시아 정부가 미국, 유럽연합(EU) 국가, 일본 등 비우호국으로 분류한 국가의 기업이 러시아 자회사와 주식을 러시아 기업에 매각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외국 기업 철수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에 러시아에선 글로벌 기업의 빈자리를 자국 기업이 채워 제품을 출시하는 이른바 ‘짝퉁’ 자국 브랜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러시아 현지 매체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현지 음료 생산업체인 오차코보는 최근 ‘쿨 콜라’(Cool Cola)를 출시했다. 이는 미국의 글로벌 음료 제조 업체인 코카콜라가 러시아를 떠난 뒤 나온 ‘코카콜라’를 모방한 제품으로 보인다. 맥도날드 역시 ‘바냐아저씨’라는 러시아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러시아는 또 글로벌 기업이 비운 자리를 자국 내 기업이 넘겨받도록 하는 등 내수 강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세계 최대 가구업체인 스웨덴 이케아가 러시아를 떠나자 러시아 1위 가구업체 호프가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러시아에 아직 남아있는 220여개의 글로벌 기업은 여전히 정상적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르노 공장을 모스크바시 자산으로 남기고, 역사적인 ‘모스크비치’ 브랜드로 승용차 생산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모든 자동차 부품을 러시아 내에서 충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스크비치는 소련 시대 대표 승용차로 역사학자 루이스 시겔바움의 저서 ‘동지를 위한 자동차’에 따르면 ‘끔찍한 자동차’라며 수많은 결함이 있는 자동차를 생산한 브랜드다.

하지만 서방과의 교역이 단절되고 있는 러시아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막혀 심각한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1년 4.7% 성장세를 보였던 러시아 경제가 이번 연도에는 역성장(-8.5%)을 할 것으로 지난달 전망했다. 유럽부흥은행개발(EBRD)의 올해 러시아 성장률 전망치는 -10%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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